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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와 어떤 출근길

by 앤디


사람들 사이에서 소위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는데 인기 있는 드라마가 있다. 그런 드라마를 사람들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 역시 나의 이중성을 심심치 않게 실감하고 발견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 중 하나지만, 내가 유독 이해하지 못하는 심리가 바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에 대한 심리였다.

우연히 어쩌다 봤다가 욕이 나올 순 있어도, 굳이 찾아보면서 욕을 하는 그 심리를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세상에는 욕 없이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넘쳐나니 굳이 챙겨볼 여유가 없는 데다가, 내가 원해서 봤을 때는 (남들이 그걸 두고 막장이라 하든 말든) 그건 그냥 나에게 웰메이드 드라마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회사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의 내 모습, 내 심리를 보면 욕하면서 드라마를 보는 그것과 대체 뭐가 다른 걸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일단 나는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건과 몇몇 사람들의 행태가 막장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소심한 의심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거의 확신에 가깝다.

그런데 여전히 그 전원을 끄지 못한 채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 보고 있다. 세상 제일 편한 옷을 걸치고 포테이토칩을 먹으며 '다른 채널'을 볼 수 있기 전까지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며 말이다.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욕을 하는 것,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봐야 하는 것 이 모든 게 참 고역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비슷 무리(?) 한 것을 겪어보니 지금 당장 땡기는 드라마가 없어서 혹은 (그것 외에 아직은)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없어서 그 시간 동안 무언가를 보다가 욕이 나올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막장 드라마의 전형적인 등장인물들과 플롯이 갑작스럽게 환골탈태 할리는 만무하고 결론은 내 속이 편하려면 내가 바뀔 수밖에 없다. 막장드라마를 보려거든 욕을 하지 말든가 욕이 자꾸 나온다면 채널을 바꿔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데 부동산 상식과 관련된 책을 손에 꽉 쥐면서 졸고 계시는 내 또래의 직장인 한 분이 보였다.
한 주의 한가운데 hump day인 수요일. 그분의 피로도 알겠고, 부동산 책을 쥐고 계시는 그 마음도 너무 알 것 같았다. 마, 우리 친구 아이가 하는 마음으로 짠하게 바라보는데 그분은 최대 환승역에서 정확히 잠이 깨 전철에서 내렸다.

사실 그 역은 나도 내렸어야 되는 역인데, 나는 그 친근하고도 친근한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다 두 정거장이나 지나쳤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하마터면 지각할뻔하여 허겁지겁 뛰어야 했다.

마치 막장 드라마의 그 어떤 장면도 놓칠 수 없다는 열혈 시청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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