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회사원의 화병에는 약이 있을까

by 앤디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게으르면서도 성격이 급하다. 스스로 불편하지 않다고 느끼는 분야에 대해서는 (가령, 방청소...?) 한없이 게을렀다가도, 초단위로 신경을 건드리는 분야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잽싸게 그 대상을 눈 앞에서 치워버리는 편이다.

물리적으로 치워버릴 수 없는 대상은 거기로 흘러갔던 내 온갖 관심과 신경을 (꽤 결단력 있게) 잘라버리는 쪽으로 나를 방어하며 살아왔는데, 다시 말해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 대상에 대한 입장 정리가 그 누구보다 급하고 빠른 편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내가 이 회사를 10년씩이나 다닌 사실에 스스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나를 아는 주변 측근들도 네가 벌써 거기 다닌 지 10년이나 됐냐며 되묻곤 하는데 그 반응에 나 역시 그 사실이 남 얘기인양 얼떨떨할 때가 있는 것이다.






물론 10년 동안 회사를 다닌 세월이 10년 내내 회사만 바라봤다거나 올인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회사랑 상관없이 아니 어쩌면 회사 덕분에 잘 먹고 잘 논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10년이라는 그 세월이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나는 자꾸만 나의 10년을 되돌아보고 잘하지도 못하는 계산을 하고 만다.

그러다 보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기도 하고, 내 앞 옆 뒤에 앉았던 몇몇 인간들을 노려보기도 하고, 쥔 것 없는 초라한 내 손이 서럽고 억울해 눈물짓기도 하다가, 결국 누굴 탓하냐 여기로 인도한 건 내 발이요, 드나든 건 내 몸뚱이라며 이 모든 선택의 가장 큰 책임은 좀 더 지혜롭지 못하고 좀 더 잘나지 못한 나에게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래도 나는 생각한다. 아니 생각이 든다.

요즘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고, 이 주체할 수 없는 화를 스스로 어쩌지 못해 (자존심 상하게도) 삐죽삐죽 새 나가게 하는 것인가.

회사 내 최측근인 최대리에게 이 증상을 털어놨더니, 본인에게도 있는 증상이라며 내 병은 화병이라고 진단 내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네 어머님들이 머리에 흰 끈을 묶으시고, 가슴을 탕탕 치시는 게 너무도 이해될 것만 같다.

다음에 공적 마스크를 사러 약국에 갈 때는, 혹시 화병에 잘 드는 약이 약국에...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하냐고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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