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침, 나는 (월화수목금 평일 아침에 설정해 둔) 6시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번쩍 눈을 떴다. 바로 전날 새벽 2시가 되어서까지 잠을 못 이뤘던 사람의 기상시간이라고 믿기 힘든 교과서적인 기상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더 신기했던 건 눈만 번쩍 떴을 뿐, 몸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월요일 아침이 아니라 금요일 아침이었는데...
아, 정말이지 미칠 정도로 회사에 가기 싫었다.
뭐 이런 기분이 하루 이틀 든 건 아니었지만 그 강도가 상당히 심한 그런 아침이었다. 오늘 그냥 확 연차를 써, 말아, 이런 내적 갈등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늘까지 법원에 제출해야 할 서류들이 생각났다. 어차피 나 대신 그 업무를 대신해줄 직원도 없지만, 미리 양해되지 않은 업무대행을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부탁받는 것, 나는 이 둘 다를 몹시 싫어한다. 제출기한까지 미루고 미뤘던 문서 제출 덕에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마루 소파에 앉았다. 출근하긴 하는데 어떻게 해서든 최대치로 늦게 가보려고 뉴스를 틀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코로나 사태로 일이 끊겨 (본업을 중단하신 채) 임시 일자리로 생계를 이어가는 분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한 가정의 가장인 그분이 아이와 통화하는 장면에 울컥하여, 내가 지금 어디서 투정질인가 싶어 바로 세수를 하긴 했다.
그렇지만 출근하는 지하철 안, 마스크에 숨겨진 내 표정은 참으로 불행하였다.
9시 10분 전, 겨우겨우 사무실 안 내 자리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옆 자리 차장님이 현 사무실의 공공의 적인 다른 차장님을 험담하기 시작한다. 평소 같았으면 맞장구를 쳤고도 남을 내용이지만 매번 뒤에서 직원들끼리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도 지긋지긋하고, 공공의 적인 그 한 명의 직원이 (다른 선량한 직원들이 일하는 공간에서) 매번 이렇게 물을 흐리고 민폐를 끼쳐도 가만 내버려 두는 회사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지쳐버렸다. 차장님의 말에 그냥 별 대꾸 없이 어색한 미소를 짓긴 했는데, 아침에 출근하기 싫었던 것과 같은 급으로 그 어떤 말도 듣기가 싫었다.
원래 늘 혼자 밥을 먹다가 사정이 있어 한동안 직원들과 같이 밥을 먹었는데, 금요일인 어제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핑계를 대고 혼자 밥을 먹었다. 오늘까지 꼭 내야 했던 법원 문서를 우체국에 가서 빠른 등기로 부치고, 사무실 근처 2층 카페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얼른 한 모금 들이키고, 잘 구워진 베이글 위에 크림치즈를 덕지덕지 바른 다음 입에 넣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 식욕 자체가 없었는데, 막상 크림치즈가 두껍게 발린 베이글을 우걱우걱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이 황당했다.
베이글을 씹는 나의 시선은 카페 창가 너머의 바깥 풍경에 있었다. 나는 10년 전, 딱 이맘때도 이 풍경을 보고 있었다. 그때는 카페가 아닌 회사 옥상에서, 베이글이 아닌 주먹을 물고 혼자 울고 있었다. 소름 끼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적응되지 않는 이 환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나가고 있는 나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 얼마 전에 주문한 빨간 플랫슈즈가 착용감이 참 좋았지, 화이트랑 고민 고민하다가 레드를 주문했는데 나를 위해 이 정도도 못쓰나, 여름엔 역시 화이트지 하면서 (나름 논리적(?)인 사고 끝에) 화이트 플랫슈즈를 덜컥 주문해버렸다.
이런 내 행동에 이틀 전 친한 언니와의 통화가 생각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직장생활에 대한 한탄, 직장인으로서 나의 다짐 등등이 주 통화내용이었다. 그러다가 언니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언니는 몇 년 전에 직장생활을 접고, 지금은 주얼리를 디자인하고 제작해서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언니 말이 월화수목금토일 중 유독 일요일 저녁에 온라인 주문이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나는 주문하는 그 마음이 뭔지 너무 알 것 같다며 격하게 반응하자, 언니가 일요일 저녁에 주문하는 분들은 다 너와 같은 마음의 직장인 분들 아니겠냐고 했다.
나도 가끔은 나 스스로가 참 헷갈린다.
나의 본캐는 '소비자'고 부캐가 '직장인'인 건가 하는 생각.
소비하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건지, 직장을 다니다 보니 소비를 할 수밖에 없게 된 건지 하는 그런 헷갈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