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관성과 작별하는 김대리

by 앤디



세상이 몹시 빠르게 변한다. 솔직히 회사를 다니는 10년 동안 그 속도감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회사에 대한 모든 기대가 깡그리 접히고, 최대한 빨리 여기를 박차고 나가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부터 회사 밖 세상 속도의 아찔함을 느끼기 시작했다.(아마 이때부터 이것저것 보러 다니고, 더 많이 듣고, 여러 가지를 읽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동안 세상 속도를 모른 채 살 수 있었던 건 (부끄럽지만) 바깥세상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이유 반, 그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 반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회사의 속도가 만족스럽고, 그 궤를 같이 할 수 있는 직원들에게는 이 회사가 최고의 직장일 수도 있겠다.







일이라는 것도 그렇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파려고만 들면 한도 끝도 없이 팔 수 있는 분야가 아예 없진 않다. 다만 회사 업무에서 요구되는 것이 깊이 있는 전문성이 아닌 것뿐이다. 조직 자체와 업무의 태생적인 한계일 수도 있고, 대부분의 조직원들이 별생각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여기는 (위에서 지시하는 것이라면) 어떤 업무든 영혼과 군말 없이 쳐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환경에서 회사 안이든 회사 밖이든 나 자체로 평가받을 수 있는 업무능력이라는 것이 개발될 리 만무하다.

(혹시 이 안에서 해낸 직원이 있다면 존경스럽다)

게다가 나는 입사 10년 차 대리로서, 업무에 챌린지라는 것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챌린지는커녕 오히려 쉽고 편하다. 반복되고 익숙해진 일이라 오타 따위의 실수 외에는 실수할 일도 없고, 말이 결재이지 결재권자에게 일에 대해 물어볼 일도, 내가 올린 것에 지적받는 일도 극히 드물다.

당연히, 이건 내가 잘나서도 유능해서도 아닌 그냥 여기 일이라는 게 딱 거기까지라는 걸 의미한다.






이 모든 걸 구구절절 실감하는 데 딱 10년이 걸렸다.

요즘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을 보면 1년 안에 아니다 싶은 걸 금세 알아채고 곧바로 퇴사를 감행하는 직원들도 많던데, 그에 비하면 난 참 무슨 생각을 하고 회사를 다닌 건지 스스로가 한심스럽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과 근근이 해 나갈 수 있는 난이도의 일들은 나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었지만 딱 그만큼의 시간과 강도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으면 그 유명한 과학의 법칙인 관성의 법칙이 아주 잘 구현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지나친 경쟁에 내몰리기 싫어 입사한 이유도 있었는데, 무한경쟁이 주는 스트레스 대신 (모든 의욕을 꺾고 마는) 왔다 갔다 하는 기준과 비상식적인 조직문화에서 오는 온갖 스트레스를 옴팡 얻었다. 역시... 모든 걸 갖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년간 온몸 구석구석 쌓인 몹쓸 관성에 금을 가게 하려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는다. 오늘 공부해야 할 책을 펴고 밑줄을 긋는다.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고, 생각해야 할 것들은 생각한다.


ㅡ 잘 가거라, 망할 관성들아.

회사 밖 속도에 나가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나만의 속도를 잘 지켜내기 위해서 오늘도 이렇게 나를 단련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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