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를 위하여

by 앤디


저번 주 회사 후배가 청첩장을 들고 지점에 방문했다.

5월의 신부가 될 거라는 걸 다른 후배를 통해 이미 들어 알고 있어서 놀랍진 않았고 축하한다는 말 외에 한마디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싱거운 농담을 건넸다. 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다가 대화는 끝이 났다.

후배가 주고 간 청첩장을 열어 보다 보니 갑자기 머릿속에 '칼'이란 단어가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요즘 시대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었지만, 내가 살았던 20대는 칼 입학, 칼 졸업, 칼 취업, 칼 시집 등등 참 사람 맘 불편하게 만드는 이런 칼스러운 것들이 흉흉하고 의식되던 때였다. 위에서 예를 든 것 중 어쩌다 내 삶에 얻어걸린 건 칼 입학 하나뿐이었다. 꿈꾸던 대학 원하던 과는 못 갔지만, 나는 그때 칼 입학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 삶에서 칼과의 연이란 칼퇴나 칼국수 정도가 있는 것 같다.

청첩장을 주고 간 후배는 아직 어리지만 칼 입학, 칼 졸업, 칼 취업, 칼 시집 벌써 4관왕을 달성한 것으로 보였다. 이 모두 그녀의 선택, 그녀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물이었겠지만 타이밍이 칼처럼 들어맞는 그녀의 인생 경로가 나는 참 신기했다.






한편, 그 후배와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온 동문이지만 둘의 학번 차로 접점은 전혀 없는 어떤 사람은 아예 이런 '칼'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그를 3년 전쯤에 알게 되었다. 그는 우리 회사 고문 로펌의 변호사였고, 그때 나는 고문 변호사에게 업무를 의뢰하고 질문을 해야 하는 그런 일을 막 배우기 시작할 때였다. 사실 그 업무를 담당한다 한들 변호사를 직접 대면할 일은 없었는데 그는 로펌 사무장님을 통해 서류를 전달받지 않고 매번 우리 사무실에 직접 와서 자료를 보고 복사해갔다.
그때 그렇게 그를 처음 보았고 그 모습이 나로서는 참으로 신선했다.

그 이후로 업무적으로 질의할 때마다 답변해주는 그의 태도 또한 인상적이었다. 거침없었고 시원스러웠으며, 나는 있잖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재밌어 죽을 것 같아라는 아우라가 수화기 너머로도 전해졌다.

개인적으로 나는 능력 부족으로 못 가고 포기해버린 그 길을, 직접 걷고 있는 것도 모자라 신나게 뛰어가고 있는 듯한 그 나는 너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는 저돌적으로 접근하는 편인데, 마침 연말의 분위기를 타고 그에게 밥 한번 먹자고 제안했다. 불편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걱정했는데 선뜻 응해주었다. 첫 식사자리에서 압축판으로 들은 그의 삶은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사실 난 그의 동안 외모만 보고 일에 대한 열정이 초심과 젊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군대도 남들 다 취직했을 나이에 갔다 왔고, 군대를 다녀와서도 생산적인 활동 없이 잉여처럼 살다가 느지막이 사법시험을 준비해 변호사가 되었다. 살아오는 내내 칼 경로를 벗어나지 않은 전형적인 범생이일 줄 알았는데 취미, 취향, 선택, 생각하는 방식 등등 뭐 하나 내 예상과 맞는 것이 없었다. 나는 그 뒤로도 가끔 그에게 두 번 세 번 밥을 먹자 했고 (나만의 착각인지 몰라도) 그렇게 그와 친해졌다.

자기만의 엇박과 변주가 있는 사람, 그렇게 삶을 꾸려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건 재밌기도 하지만 왠지 모를 위안을 준다. 내 삶 곳곳에 산재한 방황 내음도 이해해 줄 것만 같고, 칼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일단, 출근했으니 주어진 일은 집중한다.

나만의 리듬을 지키기 위한 '칼'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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