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쓸 돈은 아니지만, 집에 사정이 생겨 가족 전체가 대출을 알아볼 일이 있었다. 대출 심사에 필요하단 서류를 준비해 은행에 제출하고 난 뒤에는 까맣게 잊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토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 소파에 엎드려 책을 보고 있는데 엄마가 나 대신 은행에서 들은 대출 가능금액을 알려주었다. 덧붙여진 엄마 말에 따르면, 담당 직원이 내 '직장'때문에 대출 가능금액이 증액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집에 보탬이 되었다는 것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이 말은 직장으로부터 나를 떼놓으면 나란 인간 자체로 절대 그 돈을 빌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직장이 지워지고 난 뒤의 내 현실은 상상 그 이상으로 냉정할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더 분발해야겠단 다짐을 해보았다.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독립을 유예하고 있는 나는 현재 부모님께 최소한의 성의표시만 하면서 빈대를 붙고 있다. 부모님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 머물며 세상 물정에 노출이 덜 된 채 살아온 것이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돈을 쓸 줄만 알았지 돈을 벌고 모으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던 성향마저 갖고 있다.
한 번은 마루 책장에 빽빽이 꽂힌 소설과 인문사회학 책들 사이에서 돈과 관련된 책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적이 있었다. 직장인이 된 이후로도 1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재테크의 ㅈ을 더듬더듬 알아가고 있는 나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얼마 전에 재테크 관련 책을 발견하고 '어머, 내가 예전에 이런 책을 다 샀었네' 싶어 반갑게 펴서 봤더니 결혼해 분가한 연년생 동생이 (심지어) 대학생 때 산 책이었다. 한 가지에서 태어났어도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다가, 자본주의 한 복판에서 나는 참 무슨 똥 배짱이었나 싶기도 했다. 물질 소비와 경험 소비 이 모두를 욕망하고, 돈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내가 돈에 대해 이 정도로 까막눈이었단 사실이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여하튼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특히나 더 취약하고 상상력이 부족한 내가 가족에게 필요해 '영끌 대출'에 엮인 것은 돈 공부에 대한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 내 돈이 한 푼이라도 들어가야 주식에 대한 (실질적인) 시야를 가질 것 같아 저번 달에는 난생처음 주식을 사는 '주린이'도 되었다.
점점 늙어가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회사 안에서의 넥스트 스텝은 전혀 그려지지 않고, 이 와중에 직장을 빼고 나면 이빨 전부가 빠질 꼴인 오늘. 나의 돈 공부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고 진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