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병가(病暇)

by 앤디


회사에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려던 태도, 그것이 무엇이든 뭘 좀 해봐야지 했던 마음가짐은 (회사에서는)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쪽으로 바뀐 지 꽤 되었다.
무턱대고 긍정 파워를 믿는 사람은 애초에 아니었으나, 이 정도로 염세주의자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2주 뒤쯤, 병가를 썼던 지점의 한 책임자가 돌아온다고 한다. 사실은 언제 돌아올지 그 누구도 몰랐으나, 병가 들어간 지 3개월이 된 이 시점에 복귀한다고 한다.

복귀 시점에 대해 시종일관 열린 결말로 아무 말 없었던 그였는데 3개월 만에 갑자기 몸이 괜찮아지기라도 한 걸까. 이제야 안 사실인데 유급으로 인정되는 병가 기간이 마침 딱 3개월이라고 한다.

그가 병가를 들어간 시점은 하필 코로나로 제일 바쁜 시점이었다. 대체 직원도 없이 남은 직원들끼리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일의 절대량이 느는 것쯤이야 더 하면 그만이었으나 병가 들어간 그 책임자가 여기저기 싸놓은 똥은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었다. 남아있는 직원들은 자기가 한 잘못도 아닌데 고객들에게 사과하는 일이 잦아지고, 변명하는 일이 많아졌다. 안 그래도 업무량이 늘어서 느려진 업무 속도는 더더욱 지지부진해지고 더뎌지는 악순환이 매일 반복되었다.







내가 제일 싫었던 건 일이 늘어난 것보다 묘한 거짓말을 들을 때였다.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업무가 폭증해서 일이 밀렸던 것도 있었지만, 그가 담당했던 고객들은 순전히 그가 평소에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게 더 컸다. 그가 병가로 사무실을 비운 뒤 몇몇 고객들이 그를 찾으며 원성이 잦아지자, 그에게 일을 배운(?) 후배 직원들이 그분이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쓰러진 양 지금 병원에 계신다는 말을 무기처럼 내뱉었다.

병가 직전까지 코로나로 본인의 업무태만을 물 타기 하더니, 이제는 그를 대신해서 후배들이 병가로 물타기를 해주는구나 싶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하필 제일 바쁘던 시점 전후로 그 책임자의 건강이 진짜 나빠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평소에 보인 근무 태도, 행실을 아는 직원들은 그 병가의 진위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내가 그의 병가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우와ㅡ 였다.

수세에 몰리고도 늘 뻔뻔하게 업무 태만을 보이며 본인이 지점 업무를 다한 양 떠들고 다니던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수가 결국 병가라니 상상치도 못한 수였다. 대단했다.

그는 병가를 내고 난 뒤에도 직원들을 뜨악스럽게 만들었다. 병가 증빙 서류를 내지 않았다가 해당 부서에서 요청하니까 그제야 냈다는 소리가 들렸고, 그의 병가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 건지 (그의 일을 대신 떠맡아야 하는) 지점 직원 어느 하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해당부서에서 일하는 동기가 어느 날 나에게 그의 복귀 시점을 물어와서 모른다 했더니 그 부서든 같이 일하는 지점이든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동기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 그 날은 그의 병가가 공식적으로 종료된 다음날이었다. 그가 해당 부서에 연락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으니, 같은 지점인 나에게 물어온 것이었다. 나는 아는 바가 일체 없었고 그건 지점 내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그 동기가 회사에 조만간 그 책임자의 이름을 딴 아무개 법이 생길지 모르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혹시 나도 병가 낼 일이 있으면 그전에 내라며 말이다.







노동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권익만 쏙쏙 누리는 몇몇 사람 때문에 훗날 진짜 병가를 내야 할 선량한 직원들이 피해를 볼지도 모르겠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고, 나 또한 매 순간 모조리 떳떳하진 않지만 회사에는 참 창의적인 방식으로 회사를 다니고 신비롭게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또 느꼈다.

그나저나 2주 뒤에 그 책임자는 진짜 오긴 올까.

와야 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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