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의 내용은 어떤 직책과의 전 직원 간담회 일정 공지였다. 첨부파일 달력에 지점별로 회식 일정이 잡혀 있었다. 정신 못 차리게 바빴던 몇 달이 지나고, 안정을 찾아가니까 이제 저런 일정이 기다리나 싶었다. 전 직원과 간담회를 한다는 그 어떤 직책은 퇴물 공무원의 마지막 가시는 걸음마저 챙겨주기 위해 (몇 년 전에) 생겨난 회사의 신상 직책이었다.
그래,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받는다는 건... 내 일만 딱딱하고 집에 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잖아. 하면서도 내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야무지게 짜인 그 일정표를 보니 속이 뒤틀렸다.
그 쪽지가 모니터 가운데에 떠오르자마자 옆의 차장님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뭐야 이럴 거면 일인당 배정된 식비를 그냥 돈으로 주지.
그리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쯤, 나는 다음 달로 잡힌 우리 지점 간담회 불참 의사의 운을 띄웠다. 그러자 아까 저렇게 말했던 차장님이 그래도 가야지, 그러셨다. 꼭 가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했더니 또 그래도 가야지, 하시더니 퇴근하셨다. 저분은 도대체 어떤 말이 진심인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1년 위 선배가 내게 회사의 미스터리 하나를 말해준 적이 있다.
우리 회사는 지점마다 실제 일하는 실무자가 늘 2명인데, 신입직원을 뽑아도 일하는 사람은 역시 2명이라며 참 신기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직원이 뽑힌 만큼 딱 그만큼 노는 직원들이 생긴다는 걸 비꼬는 선배의 발언은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좋아요를 연거푸 누르고 싶은 멘트가 되었다.
열심히 일하는 다른 직원과 상사까지 싸잡아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선배나 나나 우린 그 확률에 공감했다. 유독 여기는 앉으면 누우려 들고, 누우면 코까지 골려는 사람들이 확률적으로 많다. 한 마디로 그들이 대세다. 저것이 인간의 본능이고 누군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닌데 옆에 있는 직원한테 피해를 주고도 멀쩡히 회사 다니는 인간들이 넘쳐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저렇게 회사 다녀도 하등의 페널티가 없는데 심지어 정년까지 보장되는 철밥통의 세계라 가능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철밥통의 세계를 십분 이용해 먹는 세대는 정해져 있다. 내 위아래 몇몇 기수들은 자기 몫을 철저히 다해 일하고도 층층시하 철밥통의 탑에서 늘 제자리걸음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꼭 위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 어제 회사에 들어와서 오늘 근로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내일부터는 각종 복지제도를 쪽쪽 빨아먹을걸 계산하는 신인류도 등장했다.
상사는 회사에서의 내 미래고, 후배는 회사의 미래이고, 딱 중간 언저리의 나 같은 대리가 회사의 오늘이라 생각하니 아무래도 간담회 참석보다는 내가 하고 있는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