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면서 이건 뭐 되지도 않는 소리인가 라는 걸 알지만, 사무실에서 그 누구와 그 어떤 말도 섞고 싶지가 않다. 업무적인 것이든 사적인 것이든 아무도 나에게 말을 안 시켰으면 좋겠다는 불가능한 바람을 품은 지 꽤 되었다.
9시부터 6시까지 말 한마디 없이 주어진 일만 기계처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진짜 이 일을 굳이 내가... 아니 사람이 해야 할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작년 가을 '일'을 주제로 하는 콘퍼런스에 갔다가 AI 전문가 보이저 엑스 남세동 대표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네오위즈 인턴 시절 추억의 세이클럽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는 그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중 뻔한 일(패턴)이 많을수록 그 일의 경제적 가치가 높을수록 인공지능이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뻔한 일이 90프로 이상을 차지하는 업무 종사자로서 나는 저 말을 듣고 대책 없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다르게 말하면 나의 일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단 소리였는데, 내가 온종일 처리하는 이 뻔한 일들은 (인간보다 더 정확한 알고리즘을 가진) AI에게 시키고 나는 다른 걸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에서 오는 설렘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금세 무너졌다. 내가 하는 일이 뻔한 건 맞지만 경제적 가치와는 거리가 먼 공적 영역이기에 AI시장이 선제적으로 치고 들어오기에는 거리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AI 기술이 인터넷 기술처럼 누구나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의 보급력을 갖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나름의 어설픈 추측이 끝나자, 역시 AI 기술의 도입보다는 내가 퇴사하는 것이 뻔한 일 탈출의 지름길이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내가 AI 기술을 떠올리게 된 건 뻔한 일에 대한 지겨움도 크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사무실의 풍경 탓도 컸다. 최근 민원인들의 항의가 빗발치는 사건들이 자주 있었다. 왔다 갔다 하는 정부지침에 직원들도 혼란스럽긴 매한가지였는데, 민원해결이 안 되는 것에 대한 온갖 불만과 욕은 일선 직원들이 다 먹어야 했다.
사실 직원들 스스로도 납득되지 않은 상황을 말이 되게(?) 설명하는 그 자체도 스트레스였지만, 고객들과 실랑이하는 과정에서 정부 지침이 그래요, 법과 규정이 그래요, 저희도 어쩔 수가 없네요.라는 말을 하거나 다른 직원들이 하는 걸 들을 때마다 심한 무력감과 자괴감을 느꼈다.
융통성 있게 적극적인 재량을 부리고 싶어도 정기 감사 때가 되면 (경중을 따지지 않고) 업무상 고의와 과실은 전적으로 담당 직원 책임으로 몰고 간다.
자네, 새롭게 뭘 좀 시도해보려고 했구먼, 참으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일세. 이런 거 당연히 없다. 그러니 힘없는 월급쟁이로서 한껏 몸을 사린 다음 퇴직 직전까지 나에게 아무 일 없기만을 바라는 피동과 수동의 아이콘이 돼가는 구조다.
한 고객의 항의가 약 한 시간 가량 이어졌던 지난주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가 대답을 해도, 저 해결 안나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대화가 이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의 심리적인 불안과 우울인 매리지 블루와 비슷한 퇴사를 앞둔 사람들의 증후군 같은 걸까.
주로 일요일 오후에서 월요일 아침까지 한시적이었던 증상이 이제는 출근하는 월화수목금 내내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AI는 지루함, 무력감, 자괴감, 불안감, 우울함이 없을 테니 내 일을 나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해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