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드러눕고 싶지만 자기 계발은 하고 싶어

by 앤디


언제부터인가 노골적인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게 되었다.

책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자기 계발서를 읽은 것만으로 만족감과 뿌듯함을 느끼는 내가 꼴 보기 싫어서였다.

~하는 법, ~하기 위한 N가지 이런 비법 전수류들은 언제나 구미를 확 당긴다. 그렇게 군더더기 없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글을 읽다 보면, 내 삶도 몇 시간 만에 덩달아 정리되고 계발된 것인 양 착각이 시작된다.

하필 나는 이 증상이 상당히 심한 편이었다. 그래서 실천 없는 자기 계발서 다독으로 언제나 스스로를 기대주 혹은 유망주로만 만들어놓은 채 안심하며 살아온 세월이 길었다.

이건 3개월 헬스 회원권을 끊은 것만으로 곧 멋진 몸매를 갖게 될 거라며, (살 빼면 입을) 새 옷들을 일찌감치 장만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결국 현실은 3개월은커녕 한 달을 채 못 나가, 일반 이용료보다 더 비싼 돈을 주고 다닌 꼴이 되고 만다. 비싸게 다녔어도 살이라도 뺐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언제나 그렇듯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왜 이렇게 잘 아냐면 다 내 얘기기 때문이다...)

실천 없는 독서를 지양한다뿐이지, 여전히 나는 자기 계발이라는 분야를 기웃거리고 염탐한다. 내 마음대로 붙인 유망주와 기대주의 딱지를 떼고, 언젠가는 자기 계발의 결과물이 되고 싶은 욕망을 포기하지 못했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책의 제목에서 무릎을 탁 쳤던 책이 있다. 그 책의 제목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이다.
어떤 책이라는 건 대충 알고 있지만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책 제목이 책의 내용과 얼마나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문장을 보고 사람의 양가적인 욕망과 감정을 어쩜 이렇게 한 마디로 잘 표현했을까 감탄했다.

이 문장에서는 '죽고 싶다'는 소멸, 단절에 대한 욕망과

'먹고 싶다'는 지속, 유지에 대한 욕망이 동시에 존재한다. 식욕은 곧 살고 싶다는 욕망인데,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떡볶이라는 가볍고 흔한 음식을 대비시키니 평소 설명하기 힘든 인간의 이중적인 감정이 찰싹 와서 달라붙는다.


인간의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 그 자체에서도 좌절을 주지만, 이율배반적인 욕망이 양립될 때도 괴로움을 준다.

(나도 모르게) 오늘의 양립할 수 없는 내 욕망으로 따박따박 월급은 받고 싶지만 내 영혼은 지키고 싶어,

살은 빼고 싶지만 삼겹살은 굽고 싶어 등을 떠올렸다. (적어놓고 보니 심오한 책 제목에 누를 끼친 것 같다...)

요리조리 도망갈 핑계로만 삼지 않는다면, 상습적인 자기변명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이 양가적인 욕망과 감정은 너무도 인간적이다.

결론은 소파에 드러누워 있고 싶지만, 자기 계발은 하고 싶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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