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간과 장소에 관심이 많다. 어떤 공간에 직접 가서 관찰하는 것도 좋아하고, 어떤 장소에 머물러 있는 것도 좋아한다. 특히 요즘에는 도시 재생과 관련한 공간과 장소에 많은 호기심을 갖고 있는 중이다.
작년 가을, 짧게나마 다시 찾은 런던에서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갔었다.
런던은 두 번째였지만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처음이었는데, 계획 없던 무작정 방문이라 부랴부랴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그날이 아니면 일정이 안됐는데, 당일 오후 갑자기 미술관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들어 어떻게 해서든 문 닫는 시간 안에 도착하려고 용을 썼다. 건물구조와 전시된 작품들 덕에 많은 영감을 얻었었는데 정작 그곳이 원래는 방치되어 있던 화력발전소였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런던 밀레니엄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산물이었다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사진을 다시 찾아보니, 그때 내가 가서 본 것이 일부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다시 가서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의 내 미래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했던 작년 초, 나는 내 방식대로 세상으로 나갈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회사를 박차고 나가려니 보이기 시작한 약점과 허점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스스로에게 제일 문제라고 느꼈던 것은 자본에 대한 공부 부족과 비즈니스 마인드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게다가 나는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고민보다는 무사안일주의에 찌들 대로 찌들어버린 공공기관 10년 차 직장인이었다. 이대로 나갔다가는 가늠도 안 되는 무언가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먹힐 것만 같은 공포감에 작년 내내 저 두 가지에 의식적으로 나를 노출시켰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한 플랫폼을 통해 전혀 볼 일 없었던 업계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세계를 강연으로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평소의 나라면 찾아보지 않았을) 낯선 분야에 대한 소식과 자료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날도 플랫폼에서 제시하는 비즈니스적 인사이트를 눈으로 훑다가 인천 서구 가좌동의 코스모 40이라는 공간에 대한 스토리를 읽게 되었다.
인천은 나의 고향이자 현재 진행형인 나의 공간이기 때문에 코스모 40이 인천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 쉬이 지나칠 수 없었다. 당연히 내 눈에 걸려들었고 나는 그 스토리를 출력해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코스모 40은 화학공장을 리노베이션한 복합 문화공간이었다. 같은 인천이지만 연고가 전혀 없는 서구는 인천 토박이인 내게도 낯선 동네고 미지의 구역이라 (2018년에 생겼다는데) 전혀 몰랐던 곳이었다.
코스모 40의 대표와 기획자가 설명하는 공간의 기획의도, 운영방식을 줄줄이 읽어 내려가고 나서 내 머리에 남은 건 그곳이 과거 화학공장이었다는 사실과 가보고 싶다는 그 두 가지였다.
지난 목요일, 코로나 때문에 몇 달째 하지 못했던 회사 동아리 모임을 드디어 갖게 되었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모임이라 무조건 넓은 공간이어야 했고, 명색이 동아리 회장으로서 회원들에게 인천의 색다르고 힙한 공간을 모임 장소로 제시하고 싶었다. 인천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에 대한 선택지가 적고 기반이 취약한 것에 늘 갈증이 컸는데 문화 복합공간을 표방하는 새로운 장소를 알게 되어 반가움도 컸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사무실에서 코스모 40으로 집합했다. 각각 취향에 맞는 음료와 베이커리, 피자까지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나는 순전히 이름에 끌려 크래프트 비어인 '첫사랑 IPA'를 주문했다. 맛이 좋아 IPA(India Pale Ale)의 기원을 찾아봤는데,19세기 영국 제국주의의 산물이라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회사 동료들과 색다른 공간에서 먹고 마시며 책 이야기를 나누니 일주일간의 스트레스가 조금씩 씻겨나갔다. 다만 퇴근 후 만나는 모임이고, 책을 읽고 토론해야 하는 활동이 있어 문화 복합공간으로서의 코스모 40은 사실 충분히 못 느끼고 왔다.
구석구석 살펴보기 위해 개인적으로 몇 번 더 갈 생각인데, 3층 카페의 F&B 경험 결과는 일단 성공적이었다. 인천 강화도의 카페 조양 방직은 인스타그래머블적인 요소는 가득한 반면 F&B가 다소 아쉬웠는데 코스모 40은 카페 맛집이기도 했다.
인생 재생(再生)에 대한 고민과 실행으로 거의 매일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가, 과거의 모습에서 멋지게 탈바꿈한 코스모 40을 본 이 날, 나는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