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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Nov 23. 2020

휴가는 상사가 갔는데, 내가 휴가인 기분


 

 퇴근 한 이후에는 회사에 대한 생각을 일절 하지 않는다. 주말은 말할 것도 없다. 입사 2년 차까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생각이 나더니, 지금은 그렇게 노력을 해도 회사 생각이 나지 않는다. (쉽게 쓰고 있지만 상당히 지난한 과정에서 형성된 방어기제다.)


 

 지난 주말, 밀린 방학 숙제를 하듯 모아둔 신문을 읽고 있었다. 평소 내가 즐겨 읽는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성취지향 직원 망치고 싶다면 권력지향 상사 아래에 둬라'였다.  제목만 보고 한 사람을 바로 떠올렸다. 아, 차라리 뭐라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했다가 지향하는 것이 있긴 하구나 하는 생각에 처음 들었던 섭섭함을 넣어두었다.


 그는 바로 무사안일 지향 상사다. 온종일 가만히 앉아 있다 집에 가는데 그나마 하나 하는 도장 찍는 것을 하기 싫어서 결재를 딜레이 시킨다. 책임지는 게 싫을 때마다 하는 버릇인데, 도대체 저런 마음가짐으로 왜 회사를 다니고 월급을 타 가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을 하나도 몰라 자신은 없는데 알려고 하는 일말의 노력이 없고, 겁은 많은데 사사건건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주저함이 없다.  나는 저이를 볼 때마다, 내가 참 당신 같은 사람에게 지점장이라고 부르기 위해서 지금껏 내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에 하루에도 몇 번씩 자괴감에 빠진다. 그리고 지점장이 저 지경이니 (그것을 이용하려는) 중간 책임자가 날뛰는 것이 용이해진다. 업무 능력으로는 도긴개긴인데, (지점장은 무능해도 본인은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자가 늘 사무실의 왕처럼 군다. 당연히 지점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만사가 귀찮은데, 네가 나 대신 나대 줘서 고맙구나 하는 태도로 착 달라붙어 좌시한다.  둘을 보고 있자면 짐 캐리가 주연한 한 영화 제목이  항상 떠오른다. 볼수록 가관이고 너무도 잘 어울리는 환장의 짝꿍이다. 그리고 그 한쌍으로 인해 발생되는 온갖 문제와 고통은 그 둘을 제외한 다른 직원들의 몫이다. 처음엔 화의 대상이 저 커플에게만 가 있었는데,  승진과 인사 배치를 이런 식으로 하고 마는 회사에도 점점 화가 치밀고 있다.  주말에 회사 생각을 한 것도 억울한데, 분노까지 얻었다. 최악이다.


 종국에 어떻게 해서든 나 스스로를 이해시키려고  내가 맺는 결론은 늘 이렇다. 이 회사라서 들의  호시절이 가능했고 가능하다는 것이다. 감히 장담컨대 우리가 동년배였다면 마주 치키는커녕 스칠 접점도 없었을 것이다.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나는 상사 때문에 망쳐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삼 일간 지점장이 휴가라고 한다. 사무실에 출근한 내가 휴가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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