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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Nov 12. 2020

저는 당신의 자식이 아닙니다


상당히 거칠게 표현해서 살다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난다. 그 두 종류의 사람이란 나도 저분처럼 되고 싶다는 바람을 품게 하는 사람과 아, 최소한 인생을 저렇게 살지는 말자 고개를 가로젓게 만드는 사람이다. 돈을 번다는 것은 세상에 노출된다는 것, (나의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몰라도) 나는 세상에 노출되면 될수록 후자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때로는 고객이었고, 때로는 일을 하다가 알게 된 사람, 때로는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그랬다.







저번 주에는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한 업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가 지금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서는 너무 흔해빠지게 당하는 민원이라 나는 상당히 형식적이고 원칙적인 응대를 하고 있었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질문이나 합리적인 민원제기가 아니라, 단순히 본인 화에 못 이겨 공공기관에 전화를 하시는 분들이 단골 레퍼토리로 사용하시는 표현들이 있다. 그 문장 안에는 대개 이 나라, 세금, 정부, 법, 서민 등의 단어가 들어간다. 그런데 그분은 신선하게도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리님, 거기서 그렇게 월급 받고 있으니깐 편하죠?

순간 나도 모르게 욱하는 감정이 치밀어올랐다. 그 누구에게도 타인의 삶에 대해 함부로 편하네 어쩌네 떠들 자격은 없는데 당신이 내 삶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들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아니요, 안 편해요. 이런 전화가 오니 불편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분은 그 말의 앞뒤로도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시고, 본인의 입장만을 내세우셨다. 나는 내가 업무담당자로서 처리해드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고 그것을 받아들이신 그분이 사무실에 방문하셔서 민원 처리가 잘 마무리되나 싶었다. 전화통화와 달리 사무실에서는 그 누구보다 점잖게 있다 가셨고, 대화를 나눠보니 말이 아예 안 통하거나 하는 그런 분은 아니셨다. 그런데 조용히 있다 가신 그분이 사무실 밖을 나가서는 본점에 전화를 해서 민원 담당 부서 차장님에게 회사 전산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둥, 내가 그것으로 인해 피해본 것을 누가 책임질 거냐는 둥 소리를 지르신 모양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오후쯤 돼서 그분에게 사과 전화가 왔다. 그분의 핵심 민원이 회사에서 보낸 문자를 받지 못해서 피해를 입었다였는데, 나중에 핸드폰을 차근차근 보니 문자가 와있었다며 오해해서 죄송하다고 하셨다. 차장님에게도 사과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분이 나에게 무턱대고 화를 내면서 나를 본인 감정의 쓰레기통쯤으로 여기는 것에 화가 났었지만, 본인 실수를 인정하시고 나와 차장님에게 전화를 주셔서 나는 그날 웃으면서 집에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어제 받은 민원 전화는 참 다른 느낌이었다. 그분의 민원도 본인만의 생각, 본인의 착각에서 비롯된 거였다. 저번에도 한 번 나에게 전화로 소리를 지르셨던 분이라 나는 그 고객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일이니깐 최대한 차근차근 설명을 드리려고 애를 썼다. 그 고객의 연세가 우리 엄마뻘이셨는데 엄마도 내가 뭐를 설명할 때마다 계속 다른 소리를 하면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던 것도 생각이 났다. 그러나 여지없이 그분은  업무담당자인 내 설명을 듣지 않고, 본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똑같은 주장만을 되풀이하셨다. 가령 나는 여기는 대한민국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분은 여기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미국이야!라고 소리 지르는 그런 형국이었다. 확인을 해달라고 해서 확인한 결과 아니라고 했는데, 그 말을 안 믿을 거면 대체 왜 확인을 해달라고 했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본인 생각과는 다른 대답을 자꾸 하니깐 그것에 화가 치미셨는지 이번에는 대화 중간부터 반말을 하시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쌍욕으로 씨 X, ㅈ같네 하면서 전화를 끊으셨다. 욕설이야 그 사람의 인격이 거기까지니깐 내 알바 아니었지만, 나잇값도 못하면서 먹어버린 나이가 뭐 그리 자랑이라고 본인보다 어려 보이면 반말부터 찍찍 날리는 그 언사에 경멸감이 생기었다.

 

 세월이 점점 빨리 흐르는 것을 실감하고, 나도 어느덧 회사에서 나이가 어린 쪽 보다는 점점 위를 향해 달려가는 중간 지점에 와있다.  나는 어제 그 고객 때문에 새삼스럽게 또 한 번 다짐을 했다. 내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을 놓는 사람으로 늙지 말자고 말이다.


 사는 건 어렵고 나이 먹는 건 쉬워서 무서워 죽겠는데, 그 와중에 추하게 나이 먹는 건 정말 너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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