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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Dec 14. 2020

마스크 한 장 차이


 주말에 조카들이 집에 놀러 왔다. 코로나가 발생한 올해 초부터 조카들의 활동반경은 이미 충분히 제한적이었지만, 최근 코로나 확산세 때문에 더더욱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제 오후 나 역시 집안에 틀어박혀 신문을 읽고 있는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애들이 나가자고 폭동을 일으킨다고 했다. 올케의 친정은 대전이니, 그렇다면 이 시국에 당장 안전하게 올 수 있는 곳은 차로 20분 거리인 우리 집이다. 조카들은 언제나 귀여움으로 중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이 오는 게 늘 반갑다. 우리 집의 큰 멍멍이를 무서워하는 첫째 조카와 달리, 둘째 조카는 매번 멍멍이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 하고 만지고 싶어 한다. 올여름에 첫 돌을 지나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우리 집에 오면 항상 강아지를 보러 나가자고 떼를 쓴다. 어제도 둘째 조카강아지를 보겠다고 난리를 쳐서 내가 잠깐 집 앞에 강아지랑 조카와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사람을 마주칠 일도 거의 없고,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만에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도 올케는 혹시를 대비해서 아가에게 마스크를 씌워주었다. 내가 조카를 안고 잠깐 밖에서 강아지를 보여주는 사이 나는 조카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한참을 집안에서 맨 얼굴로 뛰어놀다가 갑자기 마스크를 쓰려니 답답한 모양이었다. 나도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 평소 깊은 유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지만, 조카 같은 아이들이 이렇게 5분 거리 집 앞을 나갈 때도 마스크를 쓰는 것에 대해 또 다른 어른인 나는 정말 책임이 없나 생각하니 미안하고 안타까운 감정들이 밀려왔다.






 우리는 관용적으로 미세한 차이를 말할 때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을 쓰곤 한다. 나는 요즘 사무실에 출근할 때마다 마스크 한 장 차이라는 것으로 이 말을 대체한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는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맡고 있는 그의 업무 특성상 그는 회사를 방문하는 고객이나 손님과 직접 대면해서 말을 하는 경우가 현 사무실 내에서 가장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아예 마스크를 쓰지 않고 대면을 했다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민원을 받았다는 얘기를 몇 번 들었다. 민원이 들어와도 그 위의 상사가 말을 해도 회사 본점 부서에서 공지가 날아와도 그는 제대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그나마 턱이나 코 밑으로 걸치기라도 했는데, 그것은  마스크 미착용자에 대한 과태료 부과제도가 도입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누가 봐도 돈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과태료가 부과되면 쓰는 척이라도 하겠구나 예상은 했었다. 다만, 이 와중에도 마스크 착용을 본인 멋대로 턱스크나 코스크로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사람 때문에 시비가 붙었다는 뉴스를 떠올렸다. 나는 그때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오히려 큰 소리를 내고, 폭력을 휘둘렀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코로나가 전염성이 있는 질병이 아니었다면 저렇게 이기적이고 파렴치한 인간이 어떻게 되든 말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단 한 톨의 관심조차 갖기 싫은 인간이 아무 죄 없이 방문한 고객들과, 내 주변 동료들과, 나와, 우리 모두의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서 저 면상을 보고 있으면 화가 치민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 전체가 호모 마스쿠스가 된 것에 나 역시 큰 불편함을 느끼고 더 나아가 우울감과 슬픔에 빠져들 때있다. 그런데 마스크 한 장으로 내가 새삼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면, 생물학적으로 같은 인간이라고 해서 모든 인간이 인류를 명명하는 한 명칭으로 묶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알기로 저 사람에게도 어린 자녀들이 있다. 놀랍고 신기하다. 거의 노이로제에 걸린 양 저 사람이 마스크를 제대로 쓰고 있나 확인하는 내게 옆에 앉은 차장님이 말씀하신다.

김대리, 저 인간 상 타나 본데. 마스크 때문에 차장님 말씀이 정확히 들리지 않았던 내가 좀 큰소리로 되물었다. 네? 차장님 잘 안 들려요. 저 인간 상 탄다고. 무슨 상이요?
베스트 친절사원. 마스크 한 장 차이로 나는 어떤 인간의 한 단면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봐도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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