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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Dec 18. 2020

멀미가 난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책을 읽은 것도 아닌데, 요 며칠 계속 멀미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안팎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소화가 안되고 버겁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결국 3일 전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쥐어짜는 듯한 복통에 시달려 잠 한 숨을 못 잤다. 역겹다, 토할 것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더니 진짜로 몸이 그렇게 반응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하필 내가 밤새 토하고 잠을 못 잔 다음날은 다른 기관과 (당일 일처리를 해야만 하는 일들로) 약속한 건이 많은 날이었다. 식은땀을 한차례 흘리고 경련이 조금 완화된 느낌이 들자, 나는 바로 출근 준비를 했다. 밤새 끙끙거리는 걸 본 엄마가 너 아니어도 회사는 돌아가니까 그냥 오늘 하루 쉬라고 하셨다. 나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출근을 했다. 회사에 대한 애정, 대단한 책임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신 일을 맡길 사람이 없어서였다. 대다수의 직원들에게 신뢰가 사라진지는 꽤 되었고, 특히 이 지점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몇 달 전 휴가도 아닌 지방 출장을 갔을 때, 사무실에서 마무리해줘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어서 하루 종일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조직의 협업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동료를 가져야 가능한 것일까라는 것을 생각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올해  이 지점에서 (제대로 된 설명과 양해 없이) 제일 바쁜 시기에 본인 업무를 내팽개치고 장기간 도망친 직원을 가까이서 보았다. 복귀하고 나서도 미안하다, 고맙다 말 한마디 없이 의기양양한 그의 행보를 보면서 추한 인간의 면모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나는 진짜 이유가 있는 하루라 해도 내 일을 대신 처리해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하고 설명하는 자체가 그 인간과 똑같은 족속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꾸역꾸역 아픈 몸을 이끌고 회사에 출근했는데 희한하게 서글픈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내가 그날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나 아니면 안 돼 하는 특수성 있고 전문적인 일도 아닌 데다가, 일생을 무책임하고 무능한 직원들은 뒷자리에 편히 앉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큰소리 뻥뻥 치는데 이게 다 뭐지 싶었다.






 아프니까 마음이 더 약해진 것인지, 긴 시간 동안 겹겹이 쌓여온 온갖 감정들이 몸까지 반응할 정도로 터져 나온 것인지 하루 종일 배와 마음 둘 다 쥐어짜듯 아프기만 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 끝에는 늘 서늘하고 냉정한 선언을 하게 된다. (주변에서 눈치챘든 말든) 나도 피해 안 줬으니까, 그 반대가 됐을 때 나 역시 그 피해를 떠안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선을 확실히 긋고 만다. 죽어도 손해 보기 싫다는 이런 선언이 마음에 든다거나 편한 것도 아니다. 나도 누군가를 돕고 싶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다. 회사라서 안 되는 걸 거라고 마음을 확 접어버린 뒤에는 한참 동안 말도 못 할 씁쓸함이 뒤따른다.


 6개월간 지점에서 청년인턴으로 일했던 이십 대 젊은 친구에게서 어제  메시지가 왔다. 대리님 회사는 어때요? 물어와서 똑같다고 했다. 그 친구가 자기는 세상 화가 없어졌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취업을 하기 전이든, 하고 난 후든 다 잘살고 싶은 거 그거 하나였는데 뭔가 참 어렵다. 또 멀미가 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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