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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Dec 29. 2020

불평 많은 놈보다는 욕심 많은 놈


 평소보다 길었던 지난 주말, 1년 혹은 2년에 걸쳐 모아 온 자료들을 정리했다. 엄밀히 따지면 아직 진행 중이지만, 

얼추 60~70프로 정리가 된 것 같다. 컴퓨터 모니터로 텍스트를 읽는 것이 익숙지 않은 나는 자세히 읽고 싶은 것,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해서 여전히 종이로 간직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다 보니 책과 신문, 온갖 출력물들이 온 집안에 넘쳐나고 있다.


 의식의 흐름대로 여기저기 쌓인 출력물부터 정리해나가다가 팬데믹이란 말의 뜻이 설명된 종이도 발견하였다. 나는 이 단어를 올해 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불과 1년도 채 안된 시간만에 일상용어로 받아들인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팬데믹에 이어 버려야 할 각종 출력물들을 골라내다가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나의 얕은 관심사에 한숨이 새어 나오기도 했지만 유독 자료의 비중이 큰 분야(?)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바로 회사원으로서의 내 현 좌표를 확인하고, 끊임없이 미래에 대해 고민한 2년에 걸친 흔적들이었다. 종이 사이사이 끄적거림이 보였고, 밑줄이 보였고, 별표가 보였다. 남들이 괜찮다 하는 길을 무작정 갔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잘 알아버린 내가 취할 법한 너무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2년을 돌이켜봤을 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스스로 자책만 하고 있었는데, 나름 이토록 치열하게 고민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주 잠깐 나 자신을 다독여주었다.

 




 최대한 내게 맞는 솔루션을 찾기 위해서 그토록 자료를 모으고 읽고 난 뒤, 내가 내린 첫 결론은 회사를 다니면서 다음 스테이지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나의 사회학적 나이와 바깥세상의 차디찬 온도를 감안한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그런데 한 번 아니야라고 결론 내린 공간에서 덤덤한 감정상태를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회사원으로서의 정체성과 조직생활의 한계가 드러나는 사건이 발생할 때면 매번 분노와 불만이 치솟았다. 하필 내가 현재 속한 지점의 인적 구성은 (우리 회사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정도로) 그 상태가 심각하여 그러한 사건의 빈도수가 역대급이었다. 거의 매일 발생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나의 로직으로 정리하느라 머릿속은 항상 복잡했고, 악한 감정이 생길 대로 생겼는데 아닌 척하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좋은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나의 모든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쓰기 시작한 글도 그 어떤 효용성을 찾을 수 없는 불평, 불만으로 가득 찬 일기장처럼 느껴졌다. 2년 간 읽고 쓰는 것으로 그나마 버텨왔는데, 이제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하는 생각에 그토록 좋아하던 것들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자료들은 여기저기 쌓아두면서, 내 마음과 나를 둘러싼 환경을 어지럽히기만 하는 하루하루가 반복되었다.




 
 그러다 요즘 내가 유일하게 즐겨보는 드라마 '허쉬'를 보다가 미루고 미뤄왔던 주변 정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스토리의 배경은 신문사지만 기자가 아니어도 공감할 수 있는 대사들이 장면 장면 쏟아져 내리는 드라마다. 여느 때처럼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사무치는 대사 하나가 들렸다. "회사는 불평 많은 놈보다는 욕심 많은 놈을 더 좋아하는 거 알잖아?"  


 '회사가 원하는 욕심'이 아니면 불평이 되는 것은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다. 드라마의 주인공도 알고, 저 말을 내뱉은 주인공의 상사도 알고, 나도 아는 것이었다. 비록 허구의 이야기 속 가공된 인물이지만 아 저기 나 같은 사람 또 있네 싶어서 왠지 모를 위로가 되었다. 회사에서는 죽어라 안 생기는 욕심에 미련을 버리고, 나는 내 불평에 대해 좀 더 집중해서 내 길을 가야겠단 다짐을 다시 한번 했다. 물론 그 불평이 말 그대로의 불평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날카로운 근거와 정교한 논리를 갖기 위한 노력은 내 몫이다. 


 사건 현장(!)의 한가운데에서 느끼는 날 선 불평에 대한 기록이 언젠가는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라 기대하며, 3일밖에 안 남은 올 해는 남은 정리를 마저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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