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나만의 속도, 나만의 리듬이 있어라고 제아무리 스스로를 다독여도 온갖 것들이 먹히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순간에는 남들의 진심 어린 걱정과 조언조차 나를 찌르는 것같이 느껴져 이곳저곳에 생채기를 남긴다. 언제부턴가 내 일상에서는 긍정과 희망의 언어가 사라졌다. 억지로라도 훌훌 털고 잘해보자 하는 식의 결론 맺기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것에 대한 제1의 이유를 늘 나에게서 찾고 개선하려 할수록 나의 분노는 점점 커져만 갔다.
당연스럽고 안타깝게도 나의 화를 가장 많이 불러일으키는 무대는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낸 회사였다. 업무능력은 1도 없이 호시절 만나 자리 차지한 월급충들이 상사랍시고 권위를 찾고, 예술하는 회사도 아닌데 가르쳐 준일을 창의적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후배가 지 권리는 귀신같이 찾을 때마다 화가 났다. 어차피 이 물에서 허우적거리기는 매한가지면서 그래도 나는 쟤들 보다는 낫잖아 자위하고 있는 내 모습에는 더 화가 치밀었다. 나는 회사에서 가장 친한 최대리에게 스스로의 증세를 진단하고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봐도 이것은 분노조절장애 같았다. 최대리가 며칠 전에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김대리를 지금 10년 넘게 알고 지내면서 욕하는 걸 한 번도 못 봤는데 욕을 할 줄 아네 였다. 자랑도 아닌데 나 욕 잘해, 회사 다니면서 사람 구실 하려고 참은 거지 하고 대답했다. 이러다 정말 고삐가 풀려 화를 불러일으킨 당사자 면전에 욕을 내뱉는 욕쟁이가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도 울린 알람을 끄고, 침대에 누워 가기 싫은 회사를 생각했다. 나는 왜 회사만 가면 발작하듯 화가 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회사에서 승진인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는데, 승진 티오에 대해 간접적인 언급이 있은 뒤로 회사 선배들이 나와의 대화 끝에 항상 승진을 언급했다. 김대리 이번에는 꼭 돼야지, 되겠지, 될 거야 등등의 워딩이었다. 설령 말뿐인 인사라 해도 이 말씀을 해주는 분들에게는 진짜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한편, 이렇게 지나가면서 툭 던져진 말들이 나를 어지럽히고 화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승진'이라는 단어는 참 묘한 말이다. 고작 두 글자인데 회사에서 저 말이 던져지면 내 안에서 순식간에 연쇄적인 반응이 일어난다. 올해 말도 안 되게 혼자 승진한 상사, 남자니까 당연히 먼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료, 이게 나를 대리라서 무시하나 자격지심 느끼게 하는 후배,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회사 체계와 여전히 다니는 나에 대한 분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치솟는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12월은 나이 들어서 슬픈 계절인 줄만 알았다. 어떤 회사원에게 12월은 몇 년째 분노의 계절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