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고객의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확인하다가 깜짝 놀란적이 있다. 뭐가 잘못됐나 재확인했던 것이 앞자리가 01로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보다 나이 어린 고객의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마침내 01년생에 태어난 고객까지 마주하게 된 것이다. 내 학번이 01학번이니 예스러운 표현을 빌리자면 첫사랑에 실패만 안 했어도 저만한 아이(?)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내 옆자리에 앉는 동일 학번 선배 대리에게 01로 시작하는 주민번호를 봤다고 했더니 그도 잠시 뭐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몇 초간의 정적을 깨고 선배가 내뱉은 말은 아, 우리 언제 이렇게 나이 먹었냐는 한탄이었다. 나도 깊이 공감을 하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에서 말이 통하는 몇 안 되는 선배인 데다가 정확히 같은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냈기에 우리는 수다를 잘 떠는 편이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삐삐 얘기가 나왔는데, 그 시절 공중전화를 찾아 가슴 졸이며 음성 녹음을 확인했다는 선배의 말에 킥킥 거리며 아 옛날 사람하고 놀리기도 했다. 우리 대화는 꽤 자주 유치하게 흘러가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정녕 우리 나이가 사십 줄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후배들 앞에서나 고객들 앞에서는 어른 입네 그럴듯하게 연기하지만 내 정신 연령은 아직 나만 아는 특정 시기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약 한 달 전부터 오른쪽 손목의 통증이 심해서 한의원에 다니고 있는데,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내 말에 선배 역시 오른쪽 팔과 어깨가 말썽이라고 했다. 서로의 질환(?)에 대해 공유하는 대화가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웠는데 그때도 입에 착착 붙는 이 대화 주제 뭐지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어제는 선배가 왜 아저씨들이 아이돌을 좋아하는지 알겠다는 말을 했다. 우리 둘 다 정작 십 대에는 아이돌을 좋아한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그 매력을 알겠다며 각자의 최애 아이돌 배틀을 뜨기도 했다. 주중 한가운데가 지난 목요일이 되면 감당할 수 없는 피로감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맴도는데 최애 아이돌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았다. 심지어 선배는 아이유가 tv에 나오면 너무 반가워서 자기 혼자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는 소리까지 했는데, 그러다가 그녀가 나왔던 드라마 얘기로 번지고 나는 오늘 그 여운이 남아 아침 출근길에 그 드라마 ost를 들었다. 노래 제목이 '어른'인 만큼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정확히 가슴 한가운데에 꽂히었다.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 않고 아무도
사무실에 도착해서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홍삼 스틱을 찢는 일이다. 내 피로감에 대한 최소한의 처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