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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Mar 17. 2021

11년 차 대리를 조심하세요


 약 2년 전, 장르로 따지면 에세이 쓰기와 관련 있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마지막 수업 날이었던 것 같은데, 선생님이 회사에 대한 글을 쓰거든 회사를 험담하는 식의 글을 쓰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쓴 건 험담이 아니라 비판이야 하면서 다소 자신 없는 선긋기를 했지만, 그 말을 듣고 난 뒤 뜨끔한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뭐가 됐든 밥벌이를 하려고 하루 종일 있는 곳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글을 쓸 때면 누워있는 내 얼굴 위로 침을 툭툭 뱉는 기분이 들곤 했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것을 멈출 수 없던 건 그렇게라도 해야 출근 전철에 몸을 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일 때문에 최근 이틀간 연차를 냈다. 인지하고 휴가를 낸 건 아니었지만 휴가 기간 중 정확히 이 회사를 다닌 지 11년째가 되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남 얘기 같기도 하고,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나는 평소에도 누군가 깊게 파고들지 않는 한 내가 다니는 회사나 일에 대해 말을 잘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뭐라 말하고, 생각하든 나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11년 동안 나는 내가 놓여 있는 장소와, 나의 모양새에 대해 뿌듯하거나 자랑스러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여기서의 생활이 끝나고 행여 누군가 지난 나의 과거를 묻기라도 한다면 나는 10년 남짓한 세월에 대해 딱히 할 말이 없구나 생각하니 극심한 허무함이 밀려왔다.

 올해 들어 처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여러  사정들이 있었는데, 일단 그중 하나가 인사이동이었다. 내가 지점 내 책임자 두 명을 직장인 괴롭힘으로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신고한 이후 한 달간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했던 시간과 같은 강도 아니 더 심한 강도로 고통받았다. 나는 이제부터 부당한 건 참지 않고 드러내겠다는 선언이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더럽고 억울해도 참고 넘어가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인가 하는 걸 금세 깨닫게 되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회사 내에서는 내가 입은 상처에 대해 직장인 괴롭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회사의 판단과 상관없이 이 모든 일련의 과정에서 (내가 가해자라 지목한 두 명 외에) 몇몇 직원들과 회사의 민낯을 똑바로 보게 되었다. 갈 데까지 가봐야 드러나는 사람의 진짜 얼굴과 회사의 레벨을 목도해 본 경험은 뼈 아팠지만 내 마음을 정리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차일피일 기약 없던 정기 인사이동과 상관없이 나는 직장인 괴롭힘 신고자라는 자격(?)으로 얼굴만 봐도 소름 끼치는 그 둘과 떨어져 일하는 소기의 성과도 거두었다. 물론 피해자라 주장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 2차 피해가 날 경우 책임져야 할 부서 책임자들의 발 빠른 대처 결과긴 하였다. 이 일로 인해 나는 마음뿐 아니라 몸에도 반응이 일어났는데,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병원에 가서 수면유도제 처방을 받아야 했다. 의사가 병원에 왜 왔냐는 당연스러운 질문에도 눈물이 줄줄 흐르는 신기한 경험도 해보았다.


 이 모든 게 마무리된 것처럼 짧게 쓰긴 했지만 이 일이 이대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서 내 안의 침전물들이 충분히 가라앉으면, 이로 인해 다친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한 글을 써봐야겠다는 다짐도 해보았다.

 짧은 연차가 끝나가는 무렵, 최대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저번 달 고객 모니터링 결과 문서가 공람되어있으니 출근하면 보라는 것이었다. 혹시 나는 나와 관련된 얘기일까 봐 무슨 문제 있냐고 물어봤다. 최대리가 한 고객이 내가 있던 지점의 어떤 사람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가해자라 지목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고객이 말한 내용을 보니 누가 봐도 그 사람이었다. 이번 일이 있고, 인사이동이 난 후에도 그는 변한 것이 없었다. 나 때문에 그 지점으로 발령 난 회사 동기가 분노에 차서 가끔 그 사람 얘기를 내게 하는데 그는 그렇게 똑같이 본인 정년을 끝까지 지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이번에 고객이 쓴 표현 중에 '어떻게 지점장 달았는지 모르겠지만'이란 문구가 있었다. 나도 그 인간과 일하는 내내 모르겠는 부분이었다. 그 덕에 이 회사와 세상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줄곧 하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2년 전 글쓰기 수업 때 선생님께 질문을 해볼 걸 그랬다. 제가 처한 상황이 대충 이러이러한데 그러니까  글이라도 쓰면서 숨 쉬면 안 되겠냐고 말이다. 출근길 전철 안에서 올해 처음 쓴 글인데 나는 이렇게 또 선생님의 말을 어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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