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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Nov 22. 2021

예사롭지 않았던 건강검진


 매년 주어지는 건강검진은 회사의 복지 혜택 중 하나다. 올해 건강검진은 병가 등 개인적인 사정으로 평소보다 늦어졌다. 기한이 11월까지라서 꾸역꾸역 예약을 했지만 유독 이번 건강검진은 하기가 싫고 무서웠다. 매일매일 내가 느끼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몸이 늘 무거웠기에 뭐라도 좋지 않다 할 것만 같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예약한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향했다.

수면 내시경 때문에 운전을 할 수 없어서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창밖에 시선을 두니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별생각 없이 예약했는데 건강검진 당일 날이 하필 수능날이었다. 귀신 같이 찾아오는 수능 한파가 올 해는 없네 하다가, 내가 수능 봤던 날을 헤아려보니 어느덧 21년이 지나있었다. 세월의 흐름에 기가 찼고, 그날의 긴장감이 오늘의 내 모습과 동떨어져 있음에 또 한 번 기가 막혔다. 버스에 사람이 없었다면 아마 미친 사람처럼 껄껄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병원에 점점 가까워지자 아직 받지도 않은 건강검진 결과가 두려워 도망치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입사한 지가 10년이 넘었으니 건강검진 경력도 벌써 10번이 넘어가는데 난생처음 드는 기분이었다.

나 오늘따라 진짜 왜 이러지 생각의 꼬리를 물다내 스트레스의 8할 회사에서 양산된다는 걸 발견했다. 그 스트레스로 악화된 건강을 회사가 매년 검진해준다니 역시 세상은 여러 모순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었다.






 세 시간에 걸친 건강검진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방치된 내 몸의 몇몇 수치들이 나를 울적하게 만들었다. 게을렀던 생활 습관, 몸 건강을 가볍게 여긴 무지함에 대한 성적표는 걱정한 그대로였다.

특히 한 부분은 재진을 해야만 하고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덜컥 겁이 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생각(?)보다는 흔한 병이었지만, 수술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급속도로 우울해졌다.


 집으로 오는 길은 걸어서 왔는데, 미용실에 들러 꽤 길어진 머리를 싹둑 잘랐다. (실연당했을 때는 제법 효과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분이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새삼 사무치게 다가온다. 이제라도 발견했으니 얼른 치료해서 내 몸에 대해 더 신경 쓰고 관리하는 계기로 삼기로 한다.


 종이를 꺼냈다.

 오롯이 몸 건강에 대한 to do list를 적어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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