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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Oct 01. 2021

퇴사의 바람이 불어온다


회사에 복귀한 지 두 달이 되었다.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복귀 바로 다음 날 중간 책임자 한 명이 퇴사 의사를 밝혔다. 누가 봐도 천년만년 회사를 다닐 것처럼 굴었던 사람이라 다수의 직원들이 코인 대박 난 거 아니냐며 의아해했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이곳을 떠나는 게 부러웠다.


나는 신입 때 배정받은 부서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다. (사람은 다 다르지만) 크고 작은 일을 통해 나와 그녀는 서로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금세 알게 되었다.

(내가 당한 건 사소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착한 척하는 말투를 앞세워 뒤통수를 후려갈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 눈에 그녀는 이것저것 가지고 싶은 욕망에 착하게 까지 보이고 싶은 욕심마저 가진 사람이었다.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병가 들어가고 얼마 안 돼서 나는 책상을 정리하고 필요한 짐을 가져가려고 아무도 없는 주말, 사무실에 온 적이 있다. 내 책상 위에 짐이 한쪽으로 치워져 있었고 자잘한 것은 서랍에 다 들어가 있었다.

자리의 주인에게 말도 없이  짐을 치운 게 불쾌했지만 누군가 내 책상을 쓰려나 보나, 업무 공백을 만든 내가 무슨 할 말이 있나 싶어 조용히 짐을 챙겨 돌아왔다.

복귀해서 옆의 후배에게 내가 없는 동안 내 자리를 쓴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아무도 쓴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중간책임자가 사무실을 떠나기 하루 전날, 내 자리로 오더니 내가 없는 동안 본인이 내 자리를 다 정리해줬다며 몰랐지? 하며 생색을 냈다. 속으로 모르는 게 날 뻔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물건을 말도 없이 건드리는 것을 그 누구보다 싫어하는데, 역시 또 당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역시 여타의 직원들처럼  회사가 아니라면 인생에서 엮일 일이 없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왜 그만두시냐, 잘 가시라 말하긴 했지만 여기 있는 동안 싫은 사람 한 명을 덜 보게 돼서 솔직히 속이 시원했다.  그럼에도 나는 회사에 아직 다닌다는 이유로, 그녀 선물을 산다고 돈 걷는데 돈을 냈고 밥을 먹는다고 귀한 시간을 썼다.  나는 또 한 번 이런 식의 사회생활(?)이라는 가면 뒤집어쓰기에 대한 피곤함을 느꼈다.






 한 편, 복귀하고 한 달이 되어갈 때 다른 지점에서 일하고 계신 지점장님이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그동안 마음고생 심했을 텐데 위로를  못해줘서 미안하다는 말씀이었다. 지나가는 인사치레도 대꾸하기 힘들 만큼 지쳐 있었지만, 말을 걸어주심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진짜 본론은 그다음 말에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일하고 계시는 한 책임자의 퇴사 소식이었다. 지점장님은 그 분과 친분이 있으셨는데, 같이 일할 때 내가 그분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물어봤던걸 기억하고 계셨다.

사실 나는 그분의 얼굴은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그분은 직원들이 볼 수 있는 회사 게시판에 매달 글을 쓰셨는데, 내가 그분을 인지하게 된 것은 그 글 때문이었다. 글만으로 사람을 다 알 수도 없고, 나 혼자만의 착각과 망상일 수도 있지만 회사에서는 도무지 만나기 힘든 귀한 캐릭터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분이 내가 좋아하는 책을 추천하거나, 내가 했던 생각들을 문장으로 표현하신 걸 읽을 때면 나 혼자 안도를 했고, 말 못 할 동질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제 그분의 글을 볼 수 없다니... 섭섭한 마음이 휘몰아쳐서 복귀 후 잊고 있던 회사 게시판을 뒤적였다. 다행히 그분의 마지막 인사 글이 있었다. 글을 몇 번이고 읽고 나서 떠나는 뒷모습마저 참 그 분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건 나만 느낀 건 아닌 모양이었다. 다른 직원들이 남긴 댓글 하나하나 그분의 선택을 응원하고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글들이 줄을 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몇 명 직원들의 퇴직과 퇴사를 봐왔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이렇게 떠나시는 분도 있구나, 새삼 또 놀라는 일이었다.


 세 번을 같이 일했던 그녀의 퇴사는 내게 단 한 톨의 영향력이 없었는데, 일면식 하나 없는 그분의 퇴사는 여전히 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도 와닿았지만, 생각대로 행동하신 그 자체가 멋짐 폭발이었다.


 하나의 생각이 하나의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나이를 먹어갈수록 실감한다.

(쓰고 보니 나만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분은 출간 계획이 있다 하셨다.

 책이 나오면 얼른, 꼭 사야지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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