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디 May 09. 2022

아파트 분양과 장기근속의 상관관계


 지난 3월 옆자리에 앉은 후배 대리가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 직원의 제안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그 후배는 꽤 뒷 번의 예비당첨자였는데도 포기자가 많아 인터넷 추첨으로 괜찮은 층이 당첨되어 계약을 했다. 그런데 그 아파트가 무순위 줍줍 분양이 되었다며 이번에는 후배가 나에게 제안을 해왔다.



대리님도 이 아파트 한 번 써보세요.


 사실 그동안 젊은 직원들이 아파트 청약에 대한 얘기를 할 때마다 늘 남 얘기라고 치부했던 나였다.  청약 가점이라는 것이 (특히 나에게는) 턱없이 느껴졌고, 결혼 이슈도 없는데 홀로 막대한 부담을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한 발 더 솔직해지자면  빚더미 발목에 붙잡혀 이 회사에서의 근속연수를 더는 늘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도 떠밀리는 상황이라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거의 매일을 결혼 혹은 독립을 부르짖는 엄마였다. 꼭 엄마의 종용이 아니어도 한 살 한 살 나이 먹을수록 나이 든 자식과 부모는 같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나 또한 절절히 느끼는 바였다. 나는 엄마의 배를 빌려 이 세상에 나와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지금껏 자라고 늙어왔건만, 엄마와 나는 취향, 가치관, 라이프스타일 등등 뭐 하나 맞는 것이 없었다.  이것은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내가 결혼을 하거나 독립할 경우 동생이 받은 딱 그만큼의 도움을 주시기로 했었기에 부모님과 상의 후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던 줍줍 분양을 덜컥 신청했다. 그리고 비교적 앞 번호대의 예비로 당첨이 되었다. 잔여 호수가 적었던 나의 경우 동, 호수 추첨이 인터넷 추첨이 아니라 방문 추첨이었고 며칠 몇 시까지 어디로 오라는 문자가 왔다.

 순전히 나의 뽑기 운이 중요한 줍줍 분양의 피날레였다. 잔여 호수에는 저층 몇 채가 있었고, 고층이긴 하나 중도금 대출이 나오지 않는 호수가 한 채 포함되었다. 동, 호수를 뽑고 나서 포기하면 청약제한이 10년이었지만 이왕 질러서 여기까지 온 거 일단 츄라이나 해보자는 맘으로 내 손의 운빨을 믿기로 했다.


 떨리는 추첨의 시간 예비 당첨 순번대로 호명을 하는데 생각지도 않게 내 이름이 맨 처음으로 불리었다. 나보다 앞 선 번호 당첨자들이 한 명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커다란 상자 안에 손을 넣고 동 호수가 적힌 카드를 뽑았다. 뽑자마자 추첨 담당자에게 바로 넘기는 바람에 정작 나는 몇 동 몇 호 인지도 몰랐는데, 내 걸 받아 든 진행자가 좋은데 걸리셨다며 축하한다 해줬고 사람들이 갑자기 박수를 쳐줬다. 뜬금없지만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아본지가 너무 오래돼서 이 분위기 뭐지 뭐지 하다가 나도 덩달아 내 당첨에 박수를 쳤다.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나는 아파트 분양권 계약자가 되었고, 생각지도 못한 액수의 빚더미를 짊어지게 되었다.


  심지어 나는 나에게 아파트 분양을 제안했던 옆자리 후배와 같은 동에 살게 되었는데, 나의 당첨을 알린 다음날 그  후배가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대리님, 이제 회사 못 그만두시겠어요.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정말로 목이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고, 곰 백 마리 정도가 내 어깨 위에 드러누워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날 이후 나의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다. 그동안 회사를 다니기 괴로워하던 감정에 냉정한 대책이 생기고 (진짜 그만두어야 할) 동력이 생기었다.


 이대로 살다가는 죽상으로 회사 다니면서 빚만 갚다가, 아파트 한 채 덜렁 남는 인상파 늙은이가 되겠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났다. 계획에 없던 빚더미가 식물 같았던 내 마음에 육식동물과도 같은 오기를 주었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어제는 아직 구덩이만 덩그러니 있는 아파트 건설현장에 다녀왔다. 봄과 어울리지  않은 서늘한 바람을 정면으로 때려 맞으며 사진을 찍었다.


 어린애스러웠던 유예의 삶이 진정  쳤음이 느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철 모르는 김대리의 말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