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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l 10. 2022

12년 만의 승진


입사 12년 만에 승진을 했다.


 오래전 대리가 된 것도 승진은 승진이었지만 그것은 결격사유가 없는 한, 너도 되고 나도 되는 자동승진이었기에 직장인이 울고 웃는 의미로서의 진정(?)한 승진은 처음 한 셈이다.


 저번 달 인사예고가 있은 후부터 회사라는 조직과 10년 넘게 해온 직장생활과 회사원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승진이라는 인사제도에 대해 수많은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그야말로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건지,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도 모를 문장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근 한 달을 미친년 속으로 지내서인지 평소 나답지 않은 내 모습을 많이 발견하기도 했다. 다칠 대로 다친 자존심을 어루만져주는 지점장님의 말 한마디에 사무실에서 왈칵 눈물을 쏟기도 하고, 이번에는 꼭 될 거라고 확신에 찬 주변 사람들의 펌프질에 쿨하게 반응하고는 혼자 있을 땐 어떻게 될지 모를 승진에 1초 단위로 연연하며 스스로를 달달 볶기도 했다.


 칸이 모자라 다 쓸 수 없는 일련의 삽질과 헛발질을 거쳐 어쨌거나 나는 승진이라는 것을 하고 말았다. 승진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상황에서 여전히 정리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지금이 아닌 나중에 돌이키면 이 팔딱거리는 감정이 왜곡될 것만 같아 일단 두서없이 휘갈겨보기로 한다.






 승진 발표가 나고 내가 느낀 건 크게 두 가지였는데 그 첫 번째는 안도였다.


 아, 이제라도 돼서 다행이다.


 그냥 이것이 다였다. 제때 한 승진 혹은 남들보다 빠른 승진을 한 사람들이 느낄법한 도취감 내지는 성취감 따위는 단 하나도 없었다. 입사동기들은 진작에 했고, 심지어 몇몇의 후배들이 먼저 한 승진에 헤벌쭉할 만큼 속이 좋거나 미치진 않았다. 회사 행사 업무를 담당하는 후배가 찍어준 사진을 파일로 받았는데, 임명장을 받는 순간의 내 모습을 보고 마스크란 아이템이 이토록 유용하고 고맙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나의 찐 표정을 보지 못했다.

 

 여하튼 뒤늦게나마 승진을 함으로써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서 당분간(?) 벗어날 수 있는 건 이번 승진이 내게 준 것 중 가장 값진 것이었다.


위를 보면서 저딴 인간도 되는 책임자를 왜 나는 안 되는 건가 하는 모멸감, 아래를 보면서 얘네가 지금 승진 못하고 빌빌 거리는 대리라 나를 무시하나 하는 자격지심, 회사에서 보낸 12년이란 세월을 한큐로 정리해주는 직책과 월급에 대한 분노, 사람 참 순식간에 옹졸해지고 치사스럽게 만드는 상황과 그 안에서 느낀 기타 등등의 감정들.


 결코 잊을 수는 없지만,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이 감정들로부터 (잠시) 벗어나게  된 것에 나는 정말 안도의 숨을 내쉬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도에 이어 내가 느낀 두 번째 감정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씁쓸함이었다.


 실제로 승진 발표가 나고 몇 시간 만에 모든 안도감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씁쓸함과 허탈감만이 남았다. 승진 발표 나기 전에도 잠을 못 이뤘는데, 무슨 조화인지 발표가 난 당일에도 잠을 못 잤다. 승진만 되면 당장이라도 두발 쭉 뻗고 숙면을 취할 줄 알았건만 내 몸과 마음이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이번 승진인사 전 몇 번의 승진이 있는 동안

나는 승진 대상자에도 들지 못했다. 회사에서 나는 승진이라는 빅 이벤트와 전혀 상관없는 직원이 되었고, 나 역시 존재감 미미한 직원으로 노선을 정하고 그렇게 행동했다. 이런 취급에도 회사를 박차고 나가지 못하는 비루한 나 자신을 그런 식으로 지키며 회사를 다녔다.


 12년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는 변한 게 없는데(어쩌면 그래서 이렇게 오랫동안 발을 절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와 새삼스럽게 '진작에 할 승진 너무 늦게 됐지' 하면서 축하를 해주었다. 물론 이 중에는 평소에도 나를 걱정해주고 진심으로 축하해준 직원들도 있다.


 그런데 알량한 권력을 휘둘러 나에게 늦은 승진을 안겨준 장본인들이 이제라도 내가 너 시켜준 거야 하는 식의 거드름으로 축하를 하고, 지나가던 악어가 눈물 닦다 웃겠다 싶을 정도의 같지 않은 위로를 건넸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제 승진했으니 다 됐잖아, 다 잊었지? 이제 웃을 수 있지?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리 회사원에게 승진과 월급이 전부라지만, 저 지경의 무심함과 단순함이 뒤범벅된 정신승리가 이젠 부럽기까지 했다.


 나 역시 회사 다니는 동안 한 번을 못하고 나갈까 봐 그렇게 마음 졸여놓고는, 하고 나서 보니 이게 뭐라고 나는 왜 그랬고 저들은 이제와 나한테 왜 저럴까 하는 생각눈물이 났다. 어차피 타인에게 관심 없는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들에 성의 있게 반응할 생각이 없어 축하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딱 거기까지 응수했지만, 이런 게 다 사회생활 아니겠어 똥보다도 드러운 으른 세계의 스킬을 적립하고 시현하는 내 모습에 또 한 번 소름 끼쳤다.






 불면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며칠 전, 밤에 무심코 채널을 돌리는데 영화 다크 나이트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이미 본 영화인데도 조커 일당이 가면을 뒤집어쓰고  은행을 터는 장면에 홀려 또 몇 분을 보고 말았다. 일당 중 한 명이 금고를 여는 미션을 완료하자마자 조커가 쏴 죽이고, 훔친 돈뭉치를 옮길 버스가 도착하자 버스를 운전한 일당을 조커가 총을 쏴서 또 죽여버린다.

 내 손에 돈이 쥐어질 때까지는 살려두지만, 분업의 소임을 다한 일원은 내 파이의 크기를 위해 가차 없이 제거한다. 뒤통수에 또 뒤통수, 똑같이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아도 다 가져가는 놈은 결정적으로 따로 있다. 총을 맞고 피 흘리며 죽어가면서까지 '신조' 운운하는 은행 직원에게 조커가 명대사를 날린다. '내 신조는 사람이 고된 시련을 겪을수록 이상해진다는 거야' 이런 극사실주의적인 영화가 다 있나, 갑자기 회사에서의 나와 회사 사람들이 생각이 나서 TV꺼버렸다.


 자고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는 다 보고 나서 엔딩 크레디트 때 하... 하면서 탄식하는 게 제맛인데, 하필 이 시점에 보게 되는 바람에 영화 도입에서부터 탄식하고 말았다.


 요 근래 회사에서 겪은 몇 가지 일들로 수많은 사람을 정리하고, 12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한 것 같아 아직도 못다 한 말들이 너무도 많다.  


 회사의 김대리로서 뒤늦은 승진 시련이 분명했지만, 내 인생 전체를 두고는 뒤늦은 승진 따위에 고된 시련이라는 고급진 지분을 주고 싶진 않다. 그러니까, 영향을 받았을지언정 그 때문에 잠을 못 자거나 이상해지는 건 여기까지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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