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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n 21. 2022

나이 든 신입사원에 대한 짧은 생각


 내가 입사했을 무렵, 내 나이는 여자 신입사원 치고 많은 것이었다. 뒤늦게 조직생활에 뛰어들어 발을 절며 헤매고 있었을 때, 빨리 취직한 내 친구들은 이미 회사에서 과장 대우를 받고 있었다. 작금의 현실과 비교하면 늦은 축에 끼지도 못하는 나이였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그래서 항간에 떠도는 속설, 조직은 나이 든 신입을 꺼려한다는 그 말에 늘 거부감을 가져온 나였다.


나이 든 게 어때서, 대체 왜?





 직장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내게도 많은 후배들이 생겼다. 그중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신입사원도 있었고, 나와 동갑이거나 비슷한 연령대의 신입사원도 있었다. 그들 중 몇 명과는 같은 지점에서 일을 하기도 했었는데 새삼 돌이켜보니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오히려 나의 주관적인 랭킹에서 최악의 신입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대부분 나이가 많았다.

 

 결코 일반화할 수 없는 내 경우만 가지고 말해보자면, 상호 간 기대하는 바의 괴리차에서 그 비극은 시작되었다. 나이가 꽉 찬 신입들이 왜 늦게 들어왔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은 사실 기존 직원들에게 중요치 않다.  빨리 들어오고 늦게 들어온 건 다 개인 사정일 뿐이다.

 그렇지만 나이가 많으면 그냥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일과 관계에 대한 눈치와 센스 수치가 높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건 그 나이까지 겪은 산전수전의 경험 값에 대한 기대감일 수도 있고, 숫자로 드러나는 나잇값에 대한 기대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조직이 나이 든 신입사원들을 꺼린다는 명제에 힘을 실어주는 사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부류는 자기 노선을 이미 정한 눈치 빤한 신입사원들이다. 특히 나의 회사와 같은 분위기에서 그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들은 애초 편하게 다닐 목적으로 늦은 입사를 자발적으로 택한 사람들이다.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 봤자 (이런 류의 회사에서) 정년까지 올라갈 수 있는 포지션은 이미 한계가 있다. 직장인의 동기부여와 인내심의 8할은 승진과 그로 인해 조금씩 상승하는 돈에서 온다.

  어린 나이에 입사해도 회사에서의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는 자들이 별로 없는 요즘, 이미 각이 나온 앞날에 기대 가득 찬 눈망울로 전력 질주하려는 나이 든 신입사원이 몇이나 될까. 어느 정도 짜인 판에서 굳이 애쓰 잘 보이고자 하는 신입사원은 없을 것이다. 물론 나이와 상관없이 신입 특유의 느낌을 풍기며 활기차게 자기 몫을 해내는 신입사원이 어딘가엔 있을 수도 있다. 아직 나는 못 만나봤을 뿐이다.


 두 번째 부류는 열심히는 하는데 결과가 없는 신입사원들이다. 회사는 열심히 했다는 과정의 감동과 훈훈한 열린 결말과는 거리가 한참 먼 곳이다.

회사에서의 일은 처리했다와 처리하지 않았다 (혹은 처리하지 못했다)의 단순한 결과와 꽉 닫힌 결말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열심히 하는 자세는 신입사원뿐 아니라 모든 사원에게 필요하다. 그 누구도 신입사원에게 완벽한 퍼포먼스를 기대하지 않기에 일단 열심히 하려는 신입사원은  기본 점수를 먹고 시작한다.

 그런데 상당한 기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이걸 모르나 하는 새삼스러운 질문을 날리거나, 몇 번이고 설명한 내용인데 늘 새롭게 배우는 양 일의 결과가 없는 신입사원들이 있다. 열심히는 하잖아요라고 넘어가기엔 그 빈도와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용인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다.

  애석하게도 내 경험치에서는 주로 나이 든 신입사원들이 이랬는데 보통 이들은 사람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가만 보면 일의 경중과 방식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그게 정답인양 고집했다. 그 방식이 창의적이고 획기적이어서 회사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면, 서로 웃으며 윈윈하고 얼마나 좋았겠냐마는 그럴 확률은 현실적으로 희박하다.


 나이가 들면 각자 가지고 있는 소소한 성공(?)의 경험들로 이게 맞다고 생각하는 나만의 방법론이 있다. 그래야 이 험한 세상 나가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런데 회사  밖에서 먹힌 그 방법론을 회사 안까지 끌고 들어오면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다. (사실 내가 그랬다...)

 백날 옆에서 말해줘 봐야 여기저기 깨지고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건 결국 본인 몫인데, 그 누구보다 혹독하게 발을 절어본 자로서 그런 신입사원들을 보면 답답하면서도 안타깝다.






 과거의 나이 든 신입사원으로 천덕꾸러기였던 내가 현재 나이 든 신입사원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식상한 표현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몇 년 뒤, 저 양반들 대체 왜 저럴까 했던 꼰대들을 이해하고 대변하는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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