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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l 17. 2022

승진의 조건


 뒤늦은 승진을 하고 나서 여기저기서 '승진'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를 듣는 일이 많아졌다.

 최근에 내가 그 이슈에 휩싸여서 그런 건지 (정작 나는 물은 적도 없는데) 본인들이 생각하는 '승진의 조건'에 대해 내 앞에서 떠드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동기와 몇몇 후배들에게 밀려 승진을 하고 나니 물론 나 스스로도 깨달은 바가 많기도 했다. 결과가 말해주듯, 승진에 있어 내 차례는 얘가 되고 쟤도 다 된 이후의 '이제야' 였기에 내 순위를 매기는 사람들이 그동안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승진의 누락을 몇 번 경험하고 나면 필연적으로 그 이유에 대해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나는 왜, 어째서, 자꾸 발리는 걸까?


 내게 의견을 표출한 사람들의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승진의 1 조건은 한 마로 윗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것으로 수렴되었다.

 위에서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네네 하면서 하고 보는 애티튜드, 일의 완성도란 마무리가 불가능할 정도의 치명타만 아니면 오케이였다. 회사일의 난이도가 없을수록, 조직원의 성장과 발전이 필요 없는 곳일수록 이런 성향은 더욱 뚜렷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 뭐가 더 있지 않겠어라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많은 직장동료들이 여긴 그게 다라고 말해주었다.


 돌이켜보면 누가 일을 처리하냐에 따른 손해와 불편은 어차피 고객이 감수하는 것일 뿐, 내부적으로는 누가 그 일을 하든 큰 차이가 없다. 더 신속 정확하게 한다고 월급 더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월급 덜 받지도 않는다.

 물론 같은 회사를 다닌다는 이유 하나로 카테고리 안에 묶이는 것 때문에 자존심 상하게 하는 인간들도 꽤 있다. 그렇다 해도 나 역시 다른 직원들보다 내가 더 탁월하다거나 성실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현재의 인사권자이자 미래의 인사권자인 윗사람을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은 너무도 간단하고 중요한 승진의 조건이다.






 최근에 나는 서로 다른 사람에게서  A가 승진이 늦어진 이유와 B가 승진이 빠른 이유를 들었다. 공교롭게도 A와 B는 모두 여직원들이었고 A는 6개월 전에 나보다 먼저 승진한 입사 1년 선배, B는 1년 3개월 전에 나보다 먼저 승진한 입사 1년 후배였다.


 그녀들의 승진 속도에 대해 의견을 표출한 사람들의 견해에 따르면 A가 승진이 늦어진 건 인사성이 없는 태도였고, B가 승진이 빠른 건 그녀의 상냥한 성격 때문이었다.


 언뜻 기묘하게 들리는 이 의견들에 대해 쓴웃음을 지었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람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이 옳고 그르냐, 승진이 되고 안되고의 그것들이 그렇게 결정적이냐를 따질 힘도 없었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분명한 건, 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정확히 파악한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아닌 (A와 B에 대해 확신에 차 말한) 그들이었다.

 

이쯤 되니 나에 대해서는 그들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해진다.


 인사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위에서 말한다고 무조건 네네 하지는 않고, 불친절한 것은 아니지만 마냥 상냥하지만은 않은 김대리였으니까 결코 늦어진 승진이 아닌 딱 지가 그렇게 산 그대로 제때 한 승진이라고 하려나.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 돌이켜보니 인사성 있고 상냥한 직원들이 같이 일하기 편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승진의 잣대에 얘는 인사 잘 안 하니까, 얘는 상냥하니까를 갖다 붙이는 건 백번을 곱씹어도 참 와닿지가 않는다.


 정년퇴직까지 정주행을 한다한들, 역시 이 회사에 적응하는 것은 끝끝내 불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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