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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Oct 30. 2022

마흔, 건강을 잃다


 건강이 내게 영구적으로 허락이라도 된 것인 양 굴다가, 연초에 이어 최근까지 건강에 발목 붙잡히는 일이 연달아 생겼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내 우선순위에 건강 혹은 건강관리가 들어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젊었기에 건강에 대해 늘 자신만만했고, 젊었기에 건강 말고 다른 것들에 눈과 마음을 뺏겼었다. 그리하여 결국... 나는 '나를 들끓게 하고 내가 쫓았던 것들'로 인해 건강을 잃었다.


 개인사와 승진을 비롯한  회사생활에서 받은 각종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푼 바람에 점점 더 살이 쪘고, 엉망진창인 식습관과 역대급 몸무게 탓에 없던 병을 얻기도 하고, 원래 약했던 부위의 질환이 심해져 올해 수술만 두 번을 했다.  


 어른이 되기 전 어릴 때도 물론 스트레스는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몸이 아팠던 적이 없었고, 설사 아프더라도 금방 회복이 되었다.

(이 포인트에서 식상하게 나이 타령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요즘 실제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아픈 데는 없냐, 나는 이래저래 아팠다, 우리 이제 예전 같지 않으니 건강 잘 챙기자는 말들이 자주 등장했다.

 특히 나의 경우 40년을 써버린 몸에 나를 돌보지  않은 게으름, 무심함까지 더해졌으니 한 번은 겪고 말았을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그 말은 너무도 무서운 진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수습 가능한  선에서 끝이 나서 이런 글도 쓸 수 있지만) 수술 전, 수술 당일, 수술 후 회복의 시간 동안 내가 세웠던 크고 작은 찬란한 계획들은 철저히 무너져갔다.

당장 내 몸이 아프고 나니, 스스로 안달복달한 모든 것들이 모조리 의미 없고 사소한 것들이 되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것을 멈춰야 하는 당혹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뼈저리게 느끼고 나니 계속 이렇게 건강을 등한시하다가는 정말 큰일이 생길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건강이 내 발목을 대놓고 부여잡고 나서야 퀄리티 있는 생존이 내 우선순위에 들어왔고, 지난달부터는 그토록 싫어했던 운동을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 입맛이 사라진다는데 먹성만큼은 한창이라 의도적으로 먹는 양을 줄이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그 결과 급격하게 찐 살들을 꽤 덜어냈고, 피부가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있으며, 극도의 피로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일생에 걸쳐 차곡차곡 쪄온 살들과 부끄러운 생활습관들을 완벽히 정리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의지박약의 작심삼일이 아닌 작심 두 달이 돼가고 있는 이 건강한 루틴이 너무도 반갑다.

 

 이렇게 건강을 의식하고 건강이 우선순위가 되는 삶을 처음 살아보니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몸을 꾸준히 움직여 땀을 흘리다 보니 일상의 스트레스가 풀리고, 감정에 치우쳐 순간순간 욱할 일도 내가 건강히 잘 사는 것에 비하면 이게 그럴 일인가 싶어  하찮게 여겨지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의도하지 않아도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게 되고, 타인이나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일도 줄어들게 되었다. 물론 매일을 오랜 시간 부대껴야 하는 회사에서는 여전히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이것은 과학인가 싶을 정도로 일적으로 민폐 끼치고  인성적으로 문제 많은 자들은 아무 타격감 없이 제 잘났다고 잘만 산다. 밥도 잘 처먹고 세상 그렇게 속편 할 수가 없으며 아프다는 소리도 잘 못 들어봤다.

이렇게 찌그러지고 시름시름 앓아봤자, 억울하고 손해 보는 건 나뿐이란 생각에 이것 또한 내 건강 챙기기의 일환으로 그들을 향한 분노와 짜증도 최대한 빨리 다스리려고 노력한다.


 




 (사십 평생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었기에...)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 시도했던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습관이 이렇게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지 몰랐다. 더 큰 재앙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의 결과였지만 이로 인해 내가 그동안 간과했거나 취하지 않았던 삶의 방식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건강관리에서 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 있었어도  지금껏 살아온 대로의 잘못된 방식을 고집하다가  스스로를 가둬두고 나아가지 못하진 않았을까 해서다.

 

 지금까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었다는 말에 깊은 공감을 표했던 나였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그 말을 다시 부여잡고 싶어졌다.


 어차피 이제는 정말 늦었건 아니건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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