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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Nov 20. 2022

여행 와서 해버린 돈 생각


 여행지에 도착한 첫날 짐을 풀자마자  마사지를 예약하러 호텔 건물 내 스파로 갔다. 여행을 계획할 때 1일 1 마사지를 생각했을 만큼 마사지는 내게 간절한 것이었다.  불이 꺼져있어 리셉션에 문의했더니, 스파는 금토일에만 운영한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몇 년 전에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코로나 탓인 듯했다.


 호텔 근처에 마사지가 가능한 곳이 있는지 찾아봐 준다기에 호텔 직원보다 내가 먼저 페닌슐라 호텔을 언급했다. 예전에 그곳에 묵은 적도 있고 마사지를 받아봤기에 번뜩 생각이 났다. 직원이 호텔로 확인 전화를 해주었고 다행히 그곳은 운영 중이었다. 페닌슐라 호텔은 내가 묵는 호텔에서 도보로 3분 안에 갈 수 있는 곳이었기에 직접 마사지를 예약하러 갔다. 내가 었을 당시 나는 다른 것에 심하게 정신이 팔려 있었기에 호텔 자체에 대한 감흥과 기억이 별로 없었다.


 공항에서 막 도착한 티를 내며 운동복에 크록스를 끌고 갔는데, 주눅 들 정도의 화려하고 고급진 호텔 로비가 눈에 확 들어왔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스파 쪽으로 가다 보니 완벽하게 길이 생각났다. 걸으면서 또 놀랐던 것은 스파로 가는 길에 이런 식당이 있었던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호텔에 식당이 있는 게 놀랄 일이겠냐마는,  평일 대낮 식당 안이 사람들로 가득 찬 건 놀라웠다. 언뜻 보기에 현지인보다 외국인이 많은 걸로 봐서 대부분 그들도 나 같은 관광객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들의 몸짓, 분위기에 왠지 모를  여유가 있었고 익숙함이 묻어 나왔다. 이것은 이벤트가 아니라 늘 있는 일이야 하는 느낌이었다. 평일 대낮에 마사지를 두 개 예약하고 가는 나도 그날만큼은 늘어진 팔자였지만, 대체 저 사람들은 무슨 수로 어떻게 돈을 벌길래 저런 표정으로 평일 오후를  즐길 수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가정을 꾸린 적도 없고, 독립도 하지 않은 채 부모님께 기생하여 살아왔던 나는 나이에 비해  금전에 대한 현실 감각이 많이 부끄러운 지경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공부를 해보겠다고 책도 찾아보고 경제신문도 읽었지만 보면 볼수록 어렵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다 얼마 전 명확히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소위 요즘 사회에서 돈 된다는 것에 내가 관심과 재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월급 안에서 분수를 지키며 안분지족하고 사는 결론으로 마무리되면 심플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좋아하는 것 대부분이 돈을 잡아먹는 것들이란 사실이 돈에 대한 내 번뇌의 시작이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세상에 살며 돈 많이 드는 을 좋아하는데, 돈을 좇으며 살고 싶지는 않은.


 사실 돈에 대한 입장 정리만 생각하면 회사를 제대로 선택한 셈이다. (큰 부자는 못되더라도) 나처럼 딸린 식구 없이 혼자라면 현재의 내 능력으로 이만한 데 찾기도 힘들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런데 이 개운치 않은 찝찝한 기분은 뭘까. 나이가 들면 보는 눈도 계속 달라지기에 욕망의 종류와 크기도 계속 바뀐다. 돈이 안 드는 쪽의 욕구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필요한 돈을 역산해서 수입을 생각해보면 언제까지 이 회사와 돈에 대한 내 입장 정리가 맞아떨어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결코 돈이라는 화두를 들고 여행을 온 것은 아니었는데, 운명의 장난처럼 캐리어에 싼 책들 중에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도 있었다. 호텔에서 본 몇 가지 장면들 때문에 고대로 들고 갈 수도 있었을 책을 다 읽고 말았다.

 사실 요즘 다방면으로 '나만 이런 거니, 나만 이제 안 거니' 하는 '나만의 시리즈'들이 팡팡 터지고  있어 어디다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짐도 많은  캐리어에 이 책을 굳이 넣은 거 보면  돈도 그중 하나였던 것이 틀림없다.


 이틀에 걸쳐 마사지 세 번에 스크럽 한 번을 받고, 책마저 다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은 아무래도 욕구를 타협하고 살긴 글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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