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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Nov 28. 2022

당신의 '1'은 무엇입니까



 얼마 전, 회사 모임이 있었는데 이벤트성으로 행운권 추첨이라는 것을 했다. 경품은 스타벅스 1만 원권과 치킨 쿠폰 둘 중 하나였다. 모임 시작 전 내가 받은 행운권 번호는 소위 불길하게 여겨지는 4였는데도 마지막으로 호명되어 치킨 쿠폰이 당첨되었다. (뭐든지 안 되는 것보다야 되는 것이 좋은 거겠지만) 내 운이라는 건 깊숙이 바란 적 없는 치킨 쿠폰이 당첨되는 수준,  딱 0.2인 건가 싶어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돌이켜보니 인생에서 0 아니면 1이라는 결과를 두고 베팅한 적이 세 번 정도 된다. 두 번은 1로 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노력으로 언감생심이었고, 한 번은 이보다 더 할 순 없다고 할 정도로 매달렸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세 번의 결과 모두 0으로 수렴되었다.


 이런 경험을 몇 차례 하고 그 와중에 나이까지 먹어버리면 일종의 방어기제라는 것이 형성된다. 아예 처음부터 1이 아닌 0.2나 0.3 정도를 노린 다음,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심신의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이다.

 약 12년 전, 1에 닿지 못해 직장인이 되기로 했을 때도 딱 0.2~0.3을 노리는 마음이었다. 덜컥 0이 되게 생겨 눈앞은 캄캄해졌고, 어차피 1이 아닌 건 다 내게 의미 없으니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1까지 될 순 없었지만) 그동안 노력해 온 총합의 결과로 나는 0을 벗어나 입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껏 0.2와 0.3을 왔다 갔다 하며 딱 그 정도의 수준을 영위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흘러 나에게 bore-out이라는 증상이 찾아왔다.(이 증상을 보어 아웃이라고 일컫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다)

 아무것도 아닌 0이 되는 게 무서워 0.2를 자처한 결과가 환장할 정도로 똑같은 업무를 반복하고, 그 궤도를 돌고 또 도는 것인지는 미처 몰랐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기대감 있는 반복이었다면 좋았으련만, 그야말로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가 다 인 생활에 파묻히고 말았다.

꽤 많은 회사 동료들이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회사 일을 좋아한다. 생각 따위 하지도 않아도 되는 반복 업무고, 일도 어렵지 않으니 얼마나 편하고 좋냐는 것이다. 그들은 적성에 맞는 자리를 찾아왔으니 축하하고 부러울 뿐이다. 반면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이 돈을 받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을 품은 채, 이 일에 적성이 맞았을 누군가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 자괴감이 든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루 중 가장 생산적인  시간들을 갖다 바쳐 손에 쥔 것이 월급밖에 없다 생각하면 스스로를 너무 헐값에 팔 아 운 건 아닐까 하는 오만한 후회도 함께 밀려온다.




 0 아니면 1이라는  세 번의 배팅 중 한 번은  사실 입사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근 10년을 매달렸는데, 결과가 0이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받아들였다. 타깃이 잘못된 건지, 노력의 방향성이 잘못된 건지, 그 둘 다 였는지 모르겠지만 1에 걸맞은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할 자신이 있기에 후회는 없다. 이 질기고 지난한 베팅에도 일상생활이 0까지 무너지지 않았던 것, 그것을 시도할 용기가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0.2 수준의 반복되는 업무와 그로 인한 월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떤 0.2점짜리는 5번이 모인다 한들 절대 1점이 될 수 없다. 그냥 0.2짜리 5개가 모여있는 것이다. 잔잔바리 운의 상징과도 같은 치킨 쿠폰은 월드컵 시청 때 없애기로 하고, 0.2의 이점을 한 껏 살려 다시 1에 도전하고자 한다. 숙원사업이었던 두 축의 하나가 무너지고 유일하게 남은 1이기에

(거창하게 말하면) 죽기 전까지 집요해질 단 하나의 1이다.



김나훔 작가, [자책]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보어 아웃의 문제점이 퇴근 후에도 무력감이 이어지며, 회사에서 온 무력감이 집으로도 이어져 피로감이 누적돼 결국 자신을 계속 지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꾸만 잊게 되는 것을 오늘 다시 한번 되새긴다.



아직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허비하여 슬프지만 0.2의 직장 생활은 그저 수단일 뿐,  

나는 '1'만 보고 전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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