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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Dec 06. 2022

회사라는 인플루언서


 나는 아직 인스타와 트위터 아이디가 없다. 블로그는 있지만 한다고 할 수 없고, 틱톡은 아예 깔아본 적이 없으며 유튜브로 영상을 검색하거나 시청하는 일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래서 이 시대 사람답지 않게 인플루언서라는 말이 어색하고, 그들이 갖고 있다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얼마 전  고객과 상담을 하다가 (어느 정도 파워 있는) 인플루언서와 협업을 할 경우 얼마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를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듣는 순간 입이 턱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더 이익이라고 하시는 바람에 한 번 벌린 그 입을 바로 다물지 못하였다. 그래서 검색창에 인플루언서를 쳐서 검색을 해보았다.


 나무 위키의 인플루언서에 대한 설명글을 읽다가, 문득 월급이라는 것을 매개로 구독과 팔로우를 하고 있는 회사라는 인플루언서에 대한 생각까지 퍼져나갔다. 물론 도저히 좋아요~라는 버튼을 누를 수 없는 곳이지만, 나의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에 내게는 그 어떤 인플루언서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체기 때문이었다. 백날 여기가 내 우물 일리 없다고 부정을 하고, 영혼 없이 일하네 마네 발버둥을 쳐봐도 결국 나는 회사라는 창을 통해 세상과 시대를 바라보게 되고 거기서 맺게 되는 교류로 사람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회사 입사를 기준으로 내가 가장 크게 바뀐 것, 다시 말해 거대 영향을 받은 부분이 뭐였는지 궁금하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두 가지가 머릿속을 스치었는데, 정말 이 두 가지가 다인가 싶어 쪽팔리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였다.






 일단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이 몹시 싫어졌다. 아무래도 일 자체가 사람과 엮이고 치이는 경우가 많으니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하다. 그렇지만 매번 나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닌데도 회사를 다니고 나서 인간 본성론의 결론은 역시 성악설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누군가에 대해 좋게 말하거나 생각하면, 얼마 안 가 그 사람의 진짜 바닥을 보게 되는 경험칙들이 쌓이면서 어떤 사람의 장점을 찾는 것도 꺼려졌다.

 유독 내게만 일어나는 일인가 싶어 이 사안에 대해  지인과 심각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지금은 남부럽지 않게 있지만) 이제껏 사람이 치는 뒤통수에 호되게 당해본 일이 없어서 사람에 대한 디폴트가 잘못 설정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나와 대화를 나눈 지인은 우리 회사의 고문 변호사였다. 내가 다니는 회사 일과 사람에 대해 꽤 많이 알면서도 지금은 아예 회사와 관련 없는 자이기에 나는 그와 만나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가 변호사로서 겪은 일을 들을 때면 변호사가 이런 걸 당한다고? 지어낸 거 아닐까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그럼에도 그가 사람에게 정 떨어졌다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꼭 그의 의견을 듣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다고 했다. 그가 사람을 대하는 말투나 행동에서 한 번도 냉소적이다라고 느낀 적이 없어서 그 대답이 조금 의아스러웠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본인 자체가 작은 것 하나에도 극도로 예민한 사람이라 사람에게 기대를 품고 실망했다가는 본인이 먼저 죽을 것 같아서 살기 위해 터득한 기술이라고 했다. 누구든 나를 뒤통수 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진짜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사람이 밉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지금껏 그가 사람에 대한 편견을 늘어놓거나, 감정적인 험담을 한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람이라면 응당 이래야 하는 기준이 없는 그가 나보다 사람을 덜 싫어하는 것 같아서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의견을 들은 지 약 석 달 정도 돼가는데 벤치마킹의 효과가 썩 좋진 않다.

 이쯤이면 정말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회사에 출근해 대. 내외적으로 사람을 만나면, (하루에 한 번 이상) 그 상대가 싫어지거나 그로 인한 영향을 받고 앉아 있는 나 자신이 싫어진다.



 그리고 나는 부자가 되고 싶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많은 돈을 벌고 모을 재능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부자가 되고 싶어졌다.

 돈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고 할 순 없지만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입사 전에는 없던 것이었다.

 입사 후, 사람들이 돈 때문에 어떻게 말하고 어디까지 행동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걸 보면서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싶단 욕망을 품게 되었다.

 돈과 교환하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이미 법으로 규정되어 있고 그것을 어길 시 범죄가 되긴 하지만, 그 외에 돈으로 교환하면 안 되는 것과 돈으로 교환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팔거나 버릴 수 없는 것들을 돈 때문에 쉽게 내던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는데,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저렇게 안 살려면 돈이 많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내게 그런 의문을 품게 한 부류의 사람들은 돈이라면 물불 안 가리기 때문에, 돈이 아닌 가치들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는 것에 능수능란하다. 그런 사람들의 먹잇감이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그들이 관심도 없고 알아듣지도 못할 가치에 대해 백 마디를 떠드는 것보다 백만 원의 돈을 보여주면 된다.

 

 실제로 제법 나와 친한 상사가 친한 직원끼리 모인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지금 회사에 불만 많고 제 잘났다 떠드는 애들? 됐다 그래, 어차피 내가 더 높은 자리 올라가면 걔네들 중 상당수는 승진(돈)때문에라도 태도 돌변해서 납작 엎드릴 거야. 난 그런 애들 신경도 안 써. 오히려 앤디 너같이 그런 게 안 통해서 통제 안 되는 애들이 진짜 문제지."


 조직원으로서는 욕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뒤가 아닌 면전에다 하셨고,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 그저  웃음이 났다. 회사에서는 빨리 승진을 하고 그렇게 오른 월급을 모아 부자(?)되는 것이 현실적인데, 돈도 안 되는 나만의 뭔가를 지키기 위해 나는 부자가 될 욕망을 품는다.






 분명 이 두 가지 증상은 회사라는 인플루언서 때문에 생긴 것이 확실한데, 찬찬히 뜯어보고 나니 어쩌면  난 회사라는 인플루언서의 영향을 하나도 받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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