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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Apr 06. 2023

내가 뭐라고


 4월도 벌써 일주일째로 접어들고 있다. 빈둥대며 허비하는 시간들을 생각하면 내게 꽤 많은 시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는 세월의 속도를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힌다.


 1/4분기, 3개월의 시간 동안 내게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평소 안 하던 짓들을 여러 건 시도했으며, 건강 때문에 한 동안 멀리할 수밖에 없던 술도 많이 마셨다. 대학에 입학한 첫 해 나는 미친 듯이 술을 퍼마셨었다. (그래서 제적경고를 먹었었고, 병도 얻었었다) 놀랍게도 이 나이에 다시 그때의 주량과 맞먹을 정도로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는데, 대신 회복 시간이 술 먹는 시간의 3~4배가 걸린다는 반전이 생겼다. 신체의 시계는 자로 잰 듯 정확하다는 것을 술 먹는 다음날마다 실감한다. 시간은 미친 듯이 빠르게 가는데 숙취와 피로의  회복은 더디고 더디기만 할 때, 아 나 정말 늙었구나, 이것이 노화구나 하고 절절하게 느끼고 만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서글픔만 느끼다가 최근에 생각에 변화가 생기는 일이 있었다. 올해 1월 좁은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감과, 그야말로 놀 친구가 없다는 외로움이 밀려와 가입한 모임이 하나 있다. 내가 들어갔을 때만 해도 열 명 남짓이었는데 지금은 50명이 넘는 모임이 될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곳이다. 가입 이후 정모가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프거나 일이 있거나 해서 못 가다가 2주 전쯤 드디어 처음으로 정모에 참석했다. 20명 가까이 모이는데 이미 친해진 회원들 사이에서 행여 혼자 어색해지진 않을까, 소개팅에서 주고받는 오글거리는 자기소개와 뻔한 질문들이 오고 가는 걸 예상하며 가기 직전까지도 갈까 말까 망설였다. 하지만 정작 그날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그야말로 별소리를 다 하면서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셨다. 그 덕분에 다음날, 그 다다음날인 일요일까지 정신을 못 차렸고 뭐라고 지껄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새 친구 사귀러 간 곳에서 이렇게 첫 판부터 이미지관리에 실패하다니 정녕 망하고 말았구나 하는 좌절감에 휩싸였다.


 그런데 그다음 날 몇 명의 새 친구들이 나에게 관심을 표해주고 다가와 주었다. 나보다 나이가 위인 분도 있고 아래인 분들도 있었다. 아직은 서로 알게 된 시간이 짧아 이런 표현이 경솔할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단 한마디의 대화에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난 늘 이게 나이의 힘이고 연륜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내게 다가온 사람들과는 희한할 정도로 티키타카가 잘 되었다. 이들 역시 일전에 쓴 시절인연으로 끝난다 해도 아, 내가 뭐라고 이렇게 다가와줄까 하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세월이 말도 안 되게 흐르고 있는 이 바쁜 와중에 저들은 내가 뭐라고 그 소중한 시간과 신경을 쓰고 있는 걸까 신기하기도 했다. 외향적인 성격에 비해 나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분명한 기준이 있는 나로서는, 자기 자신을 꾸밈없이 내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 (아 내가 뭐라고 이런 말까지 해주지 하는) 관계의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편이기 때문에 더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손에 쥐는 결과의 실체는 차치하고 가능성만큼은 무궁무진한 젊은 시절에는 인간관계의 의미나 소중함을 잘 몰랐었다. 너도나도 다 속해있는 공간에서 이기적이고 사악하게만 행동하지 않아도 생기는 게 지인이고, 관계였다. 그런데 나이가 이쯤 들고나면 저절로 만들어지는 지인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귀함을 알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나이 드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은데 하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알게 된 새 친구들과 앞으로도 연이 쭈욱 이어져서, 먼 훗날 온갖 걱정과 어색함을 뚫고 모임에 갔던 이 시절의 나 자신을 칭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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