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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Apr 28. 2023

포르쉐는 불륜 지바겐은 로맨스


 회사 직원 중 하나가 포르쉐를 샀다. (정확한 가격은 당연히 모르고) 포르쉐가 비싼 차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는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그래?라는 반응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내가 워낙 차에 관심이 없어서 별 감흥이 없기도 했고, 업무 퍼포먼스 최악에 인성까지 터무니없는 그 직원의 소식 따위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 직원이 포르쉐 중에서도 카이엔을 샀다는데 그 이름도 나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포르쉐 타이칸은 동생 친구가 타고 다녀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직원의 포르쉐 구입이 다른 직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그 존재감 미미한 직원의 뉴스가 회사의 핫이슈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무래도 차량 구입 자금의 출처였다. 그 직원이나 직원의 남편 둘 다 평범한 월급쟁이에 불과한데 포르쉐의 가격이 일반 직장인이 타기에는 넘사벽 차였기 때문이었다. 혹시 로또 맞은 거 아니냐, 주식이 대박 난 거다, 저점에 구입한 집값이 많이 올라 여유가 생겼을 거다 등등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다.

 

 지점에서는 근무 시간에 상사가 포르쉐 얘기를 한참 떠들어댔고, 퇴근 후 동료들끼리 가진 소소한 술자리에서는 후배가 그 직원의 재력이 그 정도였냐며 또 포르쉐 얘기를 꺼냈다. 회사 사람들끼리 입방아 찧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최적의 소재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반응 양상을 보고 포르쉐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






 아직 10만을 찍진 않았지만 다소 시끄러운 경유 차를 10년 넘게 잘 타고 있는 나도 차를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새로 뽑은 외제차를 타고 나타날 때 몇 번 그랬다. 그런데 그건 내가 그 친구들의 전반적인 경제상황과 여타 능력 등을 상당 부분 알고 있기 때문에 드는 감정이었다. 이것저것 평균(?) 이상으로 차곡차곡 쌓아가는 가운데, 이제 거기에 차까지 플러스가 됐구나 하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뒤섞여 나도 이렇게 가만히 뒤처질 순 없겠는 걸 하는 현실 자각 타임이었다.

 

(친하지도 않은 위의 회사 직원 사정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회사 직원이라면 쥐뿔도 없는데 비싼 차 하나만 덜렁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봐 왔을 텐데 포르쉐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침을 튀기며 심적 휘청거림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


 다들 남 일에 관심 많네 한심할 정도로 한가하다고 쓰려는데 나도 이 부분에 대해 결코 할 말이 없구나 하는 장면이 방금 머리를 스쳤다. 차에 대해 잘 몰라 상한은 모르지만, 뜻도 몰랐던 하차감의 시선을 스스로 차단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몇 년 전 여행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공항으로 모시러 가는데 그날은 내 차가 아닌 집 공용차인 경차를 끌고 나갔었다. 시간이 붕 떠 5성으로 인증받은 호텔을 구경하며 시간을 때우려고 호텔 앞까지 갔는데 (아무도 막는 이가 없었음에도) 나는 끝내 주차장에 들어가지 않았... 아니 못했다. 5성 호텔의 주차장, 굳이 경차에서 내리는 내 모습을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는 집 외에 이것저것 일정 수준 이상을 다 갖추고 난 뒤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포르쉐만으로 떠든 여타 직원들보다 더 속물 끝판왕인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여지는 사유재산으로 나를 설명하는 것은 얼마나 간편하고 명쾌하면서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글을 마무리 지으려는데 이 와중에 내 이중성이 들통나는 기억이 떠오른다.

 도로에서 네이비 지바겐을 처음 보고 완전 넋이 나갔었던 내 모습. 영화 길복순을 보면서도 아, 역시 차는 지바겐이야 했던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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