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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Apr 21. 2019

일렁거리는 일상 그림으로 잠재우기

데이비드 호크니



혼자 놀 때 미술관에 가는 것은 내게 꽤 특별한 이벤트다. 그림도 못 그리고, 그림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 건지는 사실 잘 모른다. 그냥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할 뿐이고, 내가 모르고 바라봐도 그림은 나에게 틀렸다고 한 적이 없을 뿐이다.



 친한 언니와 수다를 떨다가 우연히 데이비드 호크니란 화가를 알게 되었다. '세계에서 최고가로 작품이 낙찰된 현존 작가'란 타이틀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시점에, 그의 그림을 만날 운명이었는지 마침 서울에서 그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평일의 여유라는 호사를 누리고자 하루 연차까지 썼지만, 미술관은 사람들로 엄청 붐볐다.




1. 무엇을 그릴 것인가

 천재적 영감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 같은 그도 젊은 시절 무엇을 그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니 그 사실이 왜 그리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내가 처음으로 본 그의 그림은 그가 즐겨 마셨다는 차(tea) 그림이었다.

그는 '무엇'을 그릴 것인지 고민했다지만 예술에 있어서 결국 '누가, 어떻게'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아이디어와 표현방법으로 인해 그 '무엇'이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쓰기'를 결심한 이후 요즘 나도 '무엇'을 쓸까? 를 엄청 고민하고 있다.
머릿속 한가득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어찌할 줄 모르다가 어렵게 한 단어 한 단어를 연결하여 겨우 문장을 만든다. 지금은 무엇을 쓸지 고민하기도 벅차지만, 나도 내가 즐겨하는 것을 쓰면서 나만의 글투를 갖게 되길 바라본다.


2.  identity를 찾아서

 갈 길을 잃어버린 일상 탓인지, 요즘 유독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사람들을 보면 몹시 부럽다. 누군가는 그것을 찾을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누군가는 평생 그것을 찾으려고 애써도 못 찾곤 한다. 그런데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도 모자라 그것을 이 세상 단 하나의 것으로 표현하는 예술가를 대면하면 범인(凡人, ordinary man)의 질투심은 끝을 모르게 된다.
 알 수 없는 검은 물체에 눌려 고개가 꺾여버린, 인형 소년은 화가가 고민한 정체성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케 해주는 작품이다. 뭔가에 눌려 꺾여 있는 게 꼭 회사에서의 내 모습 같기도 했다. 일은 그저 일일 뿐이라는데 먹고사는 곳에서 정체성까지 찾으려는 것 자체가 애초에 과한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겹쳐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오랜 시간 기대했었다. 정체성에 대한 그의 고민은 결국 그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는데, 나의 고민은 나에게 사표를 그리게 할지도 모르겠다.



3. 공간에서 영감을 얻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을 보면 그가 갔거나 머물렀던 공간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낯선 공간이 주는 느낌과 거기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생각,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표현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굉장히 흥미로워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유독 시간을 들여 감상한 작품들은 그가 로스앤젤레스, 베이루트, 멕시코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들이었다.
데이비드 호크니란 사람은 여행 중 새로운 공간에서 이런 것을 느끼는구나, 화가는 그것을 그림으로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등등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으로 둘려 싸여있는 공간을 여행하는 동안 나도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1937년에 태어나신 분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생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도전하여 예술의 영역을 확장 데이비드 호크니. 관람을 마치고 전시장을 나오는데, 그의 말로 마무리되는 오디오 가이드의 마지막 멘트가 끝까지 여운을 남겼다.

“나는 향수에 잠기는 타입이 아니다.

 그저 현재를 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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