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가기 전에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고 왔다. 사실 어떤 전시 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 하나 보고 이끌리듯 다녀왔다. 그림을 상당히 못 그리는 나는 평소 화가에 대한 그 어떤 동경 같은 것이 있는데, 내가 사랑하는 여러 명의 화가 중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바로 빈센트 반 고흐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처음으로 직접 마주한 건 대학생 때 배낭 하나 들쳐 메고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였던 것 같다. 뭐가 그렇게 인상적이었는지 한 마디로 설명할 순 없지만, 그때 그 이후로 빈 센트 반 고흐에 관한 것이라면 그 무엇도 쉽게 지나치질 못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전시회 이름에서 말해 주듯 빈센트의 그림보다는 화가 빈센트, 인간 빈센트에 대해서 깊이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많이 알려져 있듯 그의 생은 상당히 짧았고, 굉장히 강렬했다. '화가 빈센트'의 고독과 '인간 빈센트'의 슬픔을 알아가면 알수록 그의 재능과 삶은 뭐 하나 일반적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이토록 행복한데, 마치 그 행복이 그의 불행한 삶에 기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의 그림을 몹시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많이 미안하고 슬펐다.
이 전시가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전시된 그림들이 (260점의 한정판으로) 3D 기술로 복제된 것이기 때문에 그림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체험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3D 프린팅 기술이란(뭔 소리인지 알 수 없어)내게는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들이었는데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그 덕을 톡톡히 보니 그것의 긍정적 효과가 한 방에 와 닿았다.
원본 그림을 전시하는 전시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을 만지지 말라는 말은 적어도 이 전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림을 가까이서 보게 하고 만지게 한다.
전시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직원분에게 물어봤더니 원본 복원율이 사실상 100%에 가까워 전시된 그림은 거의 원본과 다름없다고 생각해도 된다고 했다. 그 덕에 나는 눈으로만 봤던 빈센트 특유의 붓놀림과 덧칠을 손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그림 중 하나인 해바라기를 손으로 직접 어루만지니 그와 한층 더 가까워지는 듯한 친근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몰랐다가 알게 된 사실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반 고흐의 방’이란 그림이 그의 노란 집 근처에 있는 강이 범람했을 때 손상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 그림을 말리려고 신문지로 감싸 두었고 그 덜 마른 그림에 신문의 활자 자국이 남게 되었는데, 전시회에 비치된 현미경으로 그 부분을 확대해서 보니 그림 한 부분에서 진짜 신문의 활자 자국이 보였다. 화가인 그는 매일 그림을 그리고, 항상 그 그림들이 옆에 있었을 테니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한 사건이 그런 식으로 흔적을 남기는 것이 당연한 건데 나에게는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유독 컸다.
자연현상에서 비롯된 우연한 사건과 한 사람의 일상이 합쳐져 만들어낸 흔적이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남긴 어떤 흔적으로 나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데이비드 호크니는 빈 센트 반 고흐를 두고
“빈센트가 무엇을 그리든 마음을 사로잡는 재주가 있다.”라고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바로 이것인데 왜 그런지를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일말의 힌트를 얻었다.
자연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그 마음 하나로 버티고 있다. 목숨을 걸고 그림을 그리는데 이유는 반쯤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