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천에서 태어나고 인천에서 자랐다. 의도한 바는 아닌데 지금도 인천에서 일하고 있고, 인천에서 살고 있다. 대학을 다니고 공부하느라 서울에 잠시 머물고 왔다 갔다 한몇 년을 제외하면 인천을 벗어난 적이 없다.
외국인 친구들이 내 고향 인천에 대해 물어볼 때면 (친구들이 바로 알아챌 수 있는) Incheon Airport 외에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인천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한다. 고향이라 그런 걸까. 솔직히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서 인천 출신 래퍼들 지구인, 행주, 보이비로 구성된 리듬파워는 나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그룹이다. 그들의 노래 가사를 보면 내게 너무 익숙한 동네 이름이 툭툭 튀어나온다. (어떤 대상에 대한 반복된 언급은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시대에 인천에서 나고 자란 한 사람으로서, 그들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인천에 대한 애정과 정체성을 드러낼 때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들의 랩과 음악이 계속 흥하기를 동네 주민의 마음으로 늘 응원한다)
지난 화요일엔 하루 연차를 내고, 평소 내가 좋아하는 인천의 장소들을 골라 돌아다녔다. 인천 아트 플랫폼에서 이번 달 열리는 전시 중 흥미로운 것이 있어 사람이 없는 평일에 가고 싶었다. 인천 아트 플랫폼은 이름부터 (내가 좋아하는) 인천, 아트, 플랫폼의 합침이니 전시와 상관없이 가는 것만으로 설레었다.
'삼의 엑스 제곱은 인피니티'라는 전시는 동아시아 문화도시 2019 사업과 연계하여 진행되는 교류전이었다. 한중일 3국의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 교류하기 위해 시작된 문화예술 행사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올해는 인천, 시안(중국), 도시마(일본)가 교류 도시로 선정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인천이 개최 도시다.
전시장 1층에는 중국과 일본 작가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시안에서 활동하는 펑 시앙지에의 트윈스 사진과 도쿄에서 활동하는 아다치 타쿠토의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일부러 팜플랫을 보지 않고 작가가 무엇을 표현하려고 한 건지 작품 앞에서 한참을 궁리해보았다.
나중에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니 얼추 내가 느낀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끌리는 작품은 다소 투박하고 거친 나 같은 감상자에게도 끝끝내 뭔가를 전달하고 만다.
이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고영택 작가의 10분 영상 '보이지 않는 것의 무게'였다. 왠지 모르게 쓸쓸한 영상 위로 시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한 문장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문장을 담담한 목소리의 누군가가 읽어내는데 눈과 귀가 동시에 붙잡히는 공감각적 느낌이었다.
작품 소개글을 읽고도 뭔 얘기인지 이해가 잘 안 가고, 영상 앞에 서있는 내내 가슴에 듬성듬성 구멍이 생기는 슬픈 기분이었는데도 계속해서 보게 되는 희한한 작품이었다.
2층에 전시된 모든 작품을 감상하고 나오는데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전시가 끝나는 7월 전에 한번 더 갈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랑 같이 갔으면 근처 신포시장 닭강정이나 차이나타운 짜장면을 때리고 왔을 텐데 고거 하나는 참 아쉬운 나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