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건지 맘 둘 곳 없는 척박한 회사에도 내가 좋아하는 동료 직원들이 몇 명 있다. 나보다 1년 입사 선배이자, 학번은 같은 L차장도 그중 한 명이다. 회사에서 선후배로 만난 관계지만 비슷한 점이 많아 처음부터 친근감을 느꼈다. 그는 나와 달리 회사에 애정이 많고, 업무 능력이 뛰어남에도 뒤늦게 승진을 했다. 내가 상사라면 똑똑한 그부터 데려다 쓸 거 같은데, 회사는 늘 정반대로 그를 대접했다.
조직이 굴러가려면 이런 사람도 필요하고 저런 사람도 필요한 것쯤은 이제 나도 안다. 다 L차장 같을 수없고, 다 내 마음 같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그를 주변에 방치하는 회사를 보면서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하는 건 영영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선배 따라 강남 간 걸까 나 역시 뒤늦은 승진을 했을 때, 나는 사람들의 축하인사가 때린데 또 때리는 폭력처럼 느껴졌었다.
니들이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고?
인사치레는 본인들 마음 편하자고 하는 거고,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그냥 좀 모른 척해주길 바랐었다. (속이 뻔히 보일지언정) 어쨌든 축하한다는데 욕으로 응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기계적으로 답해야 하는 그 자체가 그야말로 곤욕이었다.
동병상련의 위력이 이렇게까지 클 줄 몰랐는데 그때 내가 받았던 아는 척(?) 중에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건 L차장의 말이었다. 오직 그 선배만 내게 아는 척하기 조심스럽다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덧붙여 L차장이 한 번도 표현 한 적 없는 (승진 직후) 심경을 내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똑같은 과정을 겪은 나라면 공감할 거 같다고 했다. 공감의 차원을 넘어 그가 표현한 한 글자 한 글자는 그냥 내 심경과 같았다.
회사에서 업무 처리를 하다 보면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할 때가 많이 있다. 그 과정에서 뼈저리게 깨달은 사실 하나는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라고 해서 다 같은 한국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기본적이고 객관적이라 하는 사전적 의미조차 엇갈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내가 L차장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 건 우리가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업무에 관한 것이든 업무와 상관없는 것이든 그가 구사하는 문장은 언제나 이해가 잘 되었다.
회사에서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를 담당하는 나에게 이런 상황과 이런 사람은 몹시 귀하다. 그리고 꼭 회사가 아니어도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두 달 전쯤이었을까. L차장과 술을 마신 적이 있다. 1차부터 2차까지 우리 대화에 통역이 필요한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흡족한 술자리를 끝내고 웃으며 역까지 걸어가는데 L차장이 나에게 물었다.
"해외여행 가서 입국카드 쓸 때, 직업란에 뭐라고 써?"
"나 public officer. 엄밀히 공무원은 아니지만 아예 상관없는 것도 아니잖아. 효과가 있든 없든 입국심사 때 신뢰감 있는 이미지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써. L차장은?"
"난, athlete."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의 대답이 너무 신박하고 웃겼다.
"왜 그렇게 쓰는데?"
"그렇게 썼다고 누가 검사하는 것도 아닌데 거기엔 내 직업을 내가 생각하는 대로 적어도 되지 않을까?"
"그럼 나도 다음에는 writer라고 쓸까? 상상만으로도 너무 기분 좋은 정신승리인데?"
"뭐 어때, 꼭 돈을 벌어야만 직업인 건가?"
내가 생각하는 직업은 내가 그 업에 가치를 느끼고 돈까지 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마지막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스스로를 직장은 있지만, 직업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입국 카드에 저렇게 쓸 생각은 해본 적 없었는데, 내 워너비 정체성을 표현해서 피해 보는 이가 없다면 이런 정신승리는 너무 건강한 게 아닐까 하는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
민폐를 끼치고 범죄에 가까운 일을 저지르고도자기 합리화나 내로남불을 일삼는 사람들의 역겨운 정신승리만 보다 보니 정신승리의 순기능을 놓치고 있었다.
그런 의미로 나역시다음해외여행때조심스럽게 시도해보고자 한다. 괜히 무슨 책 썼냐는 추가 질문이 날아올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