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디 Mar 16. 2024

5만 원 보단 비싼 자존심


직장이 정해졌을 때, 인생은 함부로 장담할 것이 못되며 사람이라면 응당 세 치 혀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직장인이 되기 전 나는 줄곧 주변 사람들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그건 바로 돈과 사람이 관련된 일은 "절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이었다.


그 입방정의 대가였을까.


나는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돈과 사람이 콜라보된 직장을 14년째 다니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 너무도 당연한 양상이겠지만 돈의 위력은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인심뿐 아니라 인간다움 또한 곳간에서 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돈에 쪼들리는 인간의 바닥을 수도 없이 봐왔다. 물론 돈이 있는 진상도 있지만, 수년간 회사에서 겪은 나만의 통계에 따르면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고 갖은 억지를 부리는 쪽은 대부분 금전상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돈은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만큼 또 무서운 것이다.






 별다를 것 없던 어느 날, 돈 때문에 신용상 문제가 생긴 고객 한 명이 문제 해결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논리로 사무실을 소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맞은 뺨을 문지르며 엉뚱한  곳에서 화풀이를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제 갓 입사한 신입사원은 응대하다 어쩔 줄 몰라했고, 남한테 싫은 소리 한마디를 못해 사람 좋기로 소문난 지점장님은 그 고객에게 너무도 만만한 책임자였다.

그 고객은 너네가 바쁜 나의 시간을 뺏었다면서도 그렇게 소중한 시간 내내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했다.


 거북하고 짜증스러운 창법의 돌림노래를 듣고 있자니 그래서 어쩌라고, 대체 당신이 원하는 게 뭔데라는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다.

모른 척할 수 없었던 나는 그 고객에게 다가가 단호한 어조로  우리가 해주고 싶어도 못해주는 건 당신의 이러한 문제 때문이고, 규정에서 허용하는 범위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고객은 처음에는 어이없어하며 툴툴거리다가 알았다며 돌아갔다.


 나는 이럴 때마다 돈이 무서워지고 그 돈을 벌러 회사에 앉아 있는 "나"와 "사람"이 싫어진다. 누군가 사용하고 물을 내리지 않은 변기, 비둘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쪼아 먹는 토사물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고 나서 몇 시간 뒤, 나는 2주째 입금되지 않은 노동의 대가에 대한 문의차 한 담당자와 통화를 하다가 봉변을 당했다. 그 담당자는 입금에 오류가 있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분히 설명하는 나에게 갑자기 대표라는 사람을 전화로 바꿔줬는데 그 대표란 자의 반응이 더 가관이었다.


그의 워딩을 그대로 옮기자면 "바빠 죽겠는데 뭐 이 딴일로 전화를 하냐"는 것이었다.

바쁘다 바빠 한국사회에서 너만 바쁘냐, 그럼 일을 똑바로 하시든가 하려다 아니 왜 저한테 화를 내세요, 그리고 제가 시간을 오래 뺏었나요라고 되물었다. 더 이상의 통화가 무의미할 정도로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었고 아주 무례한 인간이었다.


밥 벌어먹고 산 이후 나름 이 꼴 저 꼴 봐온 터라 웬만한 일에 심드렁한지 꽤 되었는데 오랜만에 목 뒷덜미와 뒤통수에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내 당신의 이름석자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서슬을 품고 지금 전화받으시는 분의 이름이 뭐죠? 하고 물었다. 그는 사이트에 나와 있잖아 하고 역정을 내며 끝끝내 본인의 이름 석자를 밝히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30분도 채 되지 않아, 대표가 아닌 담당자로부터 입금이 되지 않은 것이 맞고 곧 처리하겠다는 사과 메일이 왔다.


오전에는 오물을 보고 오후에는 오물을 뒤집어쓴 정말이지 기똥찬 하루였다.






 퇴근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날 벌어진 일들을 복기하는데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받지 못했다는 노동의 대가는 현 직장과 월급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수입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깟 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할 수 있는 정도의 액수다. 엿같은 상황일수록 빛을 발하는 내 성정이 드러난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그 돈이 없으면 안 되는 처지였다면, 직장에서 나오는 월급이 없고 그 돈이 내 수입의 전부였다면 그래도 내가 그렇게 따박따박 논리를 들이대고 본성을 내보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운전을 하는 내내 내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적어도 지금은 그 만약에라는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는 안도감, 돈과 사람에 대한 서글픔과 혐오라는 이중적인 시선이 마구 뒤섞였다.


숨만 쉬어도 돈이라는 세상.

특히 요즘은 먹고사는 것만도 팍팍한 미친 물가인데 거기에 나라는 인간의 존엄성까지 지키고 살려면 대체 얼마의 돈이 필요한 걸까.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물의 하루를 보낸 스스로를 보상한답시고, 인터넷 쇼핑을 하며 "그렇게 번 돈"망설임 없이 써 재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말을 한국어로 통역이 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