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준비할 때, 코펜하겐에 대한 설렘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건 단연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이 내가 좋아하는 바다 옆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코펜하겐에서의 일정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로 마음먹었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Humlebaek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한 시간 남짓 기차로 떠나는 근교여행에서 음악을 빼놓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폴킴의 NEW DAY가 고막에 닿자마자 나는 아무도 볼 리 없는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 된다. 이런 음악이 있는 한 기차 밖 풍경은 낯설면 낯설수록 좋다. 일상에 치여 재껴 두었던 감정의 파편들이 올라오기 좋은 최적의 조건이 조성되자 내 마음들이 평소처럼 나를 사납게 공격하지 않는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와 자기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고 한다. 소외되었던 내 마음들과 조우하다 보니 어느덧 Humlebaek역에 도착했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역에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나를 들뜨게 만드는 풍경이 펼쳐진다.
토요일 오전에 열린 동네주민들의 플리마켓.
그 덕에 평범한 대니쉬의 추억과 역사가 묻어있는 물건들을 엿보는 행운을 얻었다. 그들의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생활 소품들을 보는 것만으로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나 또한 이 평화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미술관 오픈 시간에 맞춰 가는 것임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고 미술관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이 날은 날씨마저 내 편이란 확신이 드는 완벽한 날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행수와 거리가 먼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것이 여행지에서의 날씨 요정이다) 이 날의 온도, 이 날의 분위기는 안 그래도 들떠있는 나를 공중부양시키기에 충분한 판타지였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이상적인 말은 현실에서 대개 힘이 없다. 어제와 오늘의 나를 웃고 울게 만드는 것은 대부분 '결과'다. 이렇게 결과지상주의로 살다 보면, 과정의 의미를 알아챌 지혜가 없음에도 과정의 의미를 깨닫기까지의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루이지애나 미술관까지 걸어가는 동안만큼은 결과와 의미 따위 접어두고 여정 그 자체를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
걷는 동안 하늘과 꽃에 충분히 시선을 주고, 중간중간 멈춰서 사진을 찍었는데도 오픈시간보다 일찍 미술관 앞에 도착했다. 입구 대기줄은 코펜하겐 카드 소지자 및 일반티켓 관람객과 회원권을 소지한 관람객 줄로 나뉘었다. 내 옆으로 아빠, 엄마, 아빠 품에 안겨있는 아기로 구성된 가족이 줄을 섰다. 아기는 아직 첫 돌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 그야말로 아가였는데, 칭얼거림 없이 웃으며 기다릴 줄 아는 순한 (아마도 대니쉬) 베이비였다. 그 작고 귀여운 존재에 마음을 뺏겨 힐끗힐끗 쳐다보다가, 그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눈빛에도 이내 마음을 뺏기었다. 반박할 수 없는 "진짜"사랑, 부인이 불가능한 "진짜" 행복을 표정과 눈빛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할 정도의 인상적인 한 컷이었다. 미술관 앞에서부터 (그림으로도 담기 어려운) 그림 같은 장면을 보며 내가 걸어보지 못한 길에 대해 부러움과 질투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