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배신하는 것은 항상 나, 시드니

그 두 번째 이야기

by 앤디



너무 넓은 땅, 호주.

혼자서 근교 투어를 하는 건 아예 엄두조차 나지 않아 2일간 데이투어를 예약했다.



유칼립투스에서 나오는 수액이 햇빛에 반사되면 산 전체가 푸르게 보인다는 블루마운틴. 내가 간 날은 날씨가 흐려서 솔직히 블루마운틴으로 보이진 않았다. 산을 바라보는 중간중간 언뜻 푸른빛을 느낀 것도 같았으나, 제발 좀 보여줘 하는 간절한 내 눈이 자체적으로 푸른빛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아예 활동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가 아니면)

여행지에서 날씨 불평은 하지 않는 편이다.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내가 그곳의 그런 날씨를 언제 또 느끼겠냐며 주어진 날씨의 분위기를 즐기려 한다.



블루마운틴 에코포인트에서는 전설이 있는 세 자매봉을 볼 수 있다. 그저 세 개의 바위산인가 보다 하고 지나칠 수 있는 장소였는데,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한 번 더 멈추고 바라보게 되었다. 이야기가 주는 힘이다.

데이 투어를 통해 킹스 테이블 랜드 Lincoln's Rock이라는 장소를 처음 알게 되었다. 바위 절벽에서 아찔한 인생 샷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평소 (스스로) 겁이 없는 편이라 생각해 시도해봤으나, 다리가 감당 안되게 후들후들거려서 적당한 구도에서 만족하고 인증샷을 남겼다. 자국민 사이에서는 웨딩앨범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는데 충분히 쿨하고 멋진 사진이 나올 수 있는 그런 장소였다.



블루마운틴과 킹스 테이블 랜드에 머무는 동안, 자연에 대한 두려움 혹은 경외감을 처음 경험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실로 묘한 감정이었다. 가장 오래된 대륙이 내뿜는 어떤 기운이 있었던 것일까. 보는 내내 '와, 멋있다'로만 끝지 않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계속 나를 짓눌렀다.






점심을 먹을 장소에 도착해 가이드님이 추천해 준 몇 군데 식당 중 하나를 골라 점심을 먹었다. 예전에 일했던 지점 근처에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는데 사장님이 호주에서 공부를 하시고, 그곳에서 바리스타를 하신 분이었다. 사장님 추천으로 처음 마셔봤던 플랫화이트(Flat white)를 오리지널 장소에서 마시니 감동이었다. 평소 우유 섞인 커피는 마시지 않는데도 그 맛에 사로잡혀, 시드니 여행 내내 1일 1 플랫화이트를 실행하게 된다.



데이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내가 미술관만큼이나 좋아하는 장소인 동물원이었다. 동물을 좋아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만질 수 있는 동물은 내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가 유일하다. 큰 용기를 내어 캥거루보다 작은 왈라비에게 먹이를 줘 보았다. 이때 찍힌 사진을 보면 내 표정이 세상 평화로운데 신기하게 동물들을 만나면 저절로 착한 표정이 나오는 것 같다.



비록 하루라는 짧은 여행이었지만, 퍼질 대로 퍼져있는 내 안의 인위적인 독을 (자연 앞에서) 조금 덜어내고 나니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말은 정말 옳다고 생각했다.



자연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을 배신하는 것은 항상 우리들이다.
ㅡ장 자크 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