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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가 당신 겁니까?

투 대리 프로젝트

by 앤디


업무적으로 전달할 것이 있어 본점에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입사 10년 차에 접어들어서까지 상사로 인해 이렇게 울게 될 줄은 몰랐다.

얼마 전, 사내 동아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 분과 통화할 일이 있었고 그분이 담당부서 차장으로서 보인 언사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의견 충돌이 있었다. 그분이 사내 동아리 관련 업무 담당자여서 사내 동아리 승인 신청 과정이나 요건을 그분에게 문의했다. 이와 관련한 설명이 끝나고 이미 올해는 관련 예산이 다 짜인 마당이라 당장 동아리 승인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연중에 만든 동아리라 그것을 기대한 건 아니어서 일백 프로 납득했다.

그럼 내년 예산을 짤 때 새로 만들어질 동아리가 반영되는 거냐고 물어봤다. 해보긴 하겠지만 새로 만든 동아리 하나 때문에 예산이 늘어나는 건 힘들 수도 있다고 했다.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그분이 결정권자가 아니니까 이것도 납득했다.

예산이 늘지는 못해도, 어차피 직원 동아리 지원금 명목으로 늘 배정하는 예산이 있으니 우리 동아리도 정식 승인을 받으면 일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분 말에 따르면 예산 편성 지침이 바뀌어서) 동아리 지원 예산을 책정할 때 기존 동아리 개수가 아니라 전체 직원수가 기준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그 지원금에 대한 지분은 전 직원에게 있다고 나는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분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달랐다. 그 다른 것 때문에 다른 의견이 오고 가고 목소리가 살짝 커지다 결국 내가 들은 말이란,


회사에서 해 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
회사는 안 해줘도 그만이야.
그리고 이런 식이면 막말로 회사가
기존 동아리도 다 없애버릴 수도 있어. 였다.



대화를 하는 내내 왜 이렇게 이 분이랑 말이 안 통하지 했는데 저 말에서 묻어나는 그분 사고방식의 전제를 듣고 나니 더 이상 뭘 말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대충 수습하고 전화를 끓었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밀려왔다.


ㅡ어차피 정 떨어진 회사에서 입 다물고 일이나 하지, 내가 또 뭣도 모르고 따지면서 나대었나.

ㅡ나름 핵심부서의 차장이라고 인정받는 사람이 저런 사고방식과 태도를 견지하니 역시 알 만하네.

ㅡ 결국 회사에서는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버티고 살아남는 건가.

ㅡ10년째 접어들어도 나는 이 구역 소수자에 부적응자로구나 등등

이런 생각들 속에서 계속 뚜렷하게 떠올라 마음에 걸리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차마 내뱉지는 못했지만 그분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회사가 당신 겁니까?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번 본점 방문 때 그분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분은 내가 만나야 하는 또 다른 상사와 얘기 중이었다. 솔직히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의견 충돌이 있었어서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하는 게 맞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내 생각이 틀렸다.

인사를 하자마자 너 그때 그랬지? 하는 눈빛과 말투로 누가 봐도 작정한 시비 혹은 갈굼이 들어왔다.

그리고 원래 만나기로 한 상사분이 나를 배웅해주시려는 찰나, 이상하게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래 봬도 회사 생활 10년 차인데 상사의 (다분히 감정적인) 시비와 갈굼에 새삼 소녀감성 든 건 아니었다.

그냥 화가 치밀고 서러워서 난 눈물이었다. 안 그래도 시원하게 울고 싶었는데 때마침 뺨을 맞은 탓에 눈물이 멈춰지지가 않았다.

이 상황 자체도 너무 싫었지만 아직은 방법이 없 여기에 매여 있는 나 자신에게 제일 많이 화가 났던 것 같다.

나중에 입사 동기로부터 그분이 그날 하루 동안 나를 포함한 직원 세 명과 (그분의 표현대로)한 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 분은 (그 분보다 직급은 밑이지만 입사 동기라) 지지 않고 맞섰고, 다른 한 분은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개구리처럼 팅팅 부었다는 얘기였다.

본인 입장에서 혹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온 하루 동안 그 차장님이 세 번다 맞고, 한 판(?) 한 세 명이 모조리 다 틀렸을 수도 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머리가 아픈 끝에 더 이상 상대를 안 하는 걸로 결론 내렸지만, 그래도 다음에 또 이런 식이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이 말을 내뱉을지도 모르겠다.





이 회사는 누구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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