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으로 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교육 연수를 신청했다. 내 직급에서 들어야 할 필수 과목들은 이수한 지 이미 오래 전이기도 하고, 좀 색다른 걸 들어보고 싶었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교육은 온라인 강의를 듣는 사이버와 통신 연수, 오프라인 강의를 듣는 집합 연수가 있다. 이번에 신청한 교육들은 온라인 강의를 듣는 한 달짜리 사이버 연수였다. 사실 지금까지 들어왔던 교육은 교안이나 교재만 보고도 얼마든지 시험을 치를 수 있었고, 나에게 익숙한 업무 관련 내용들이라 (온라인 강의인 경우) 제대로 수업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저번 달과 이번 달 연달아 들은 건 모두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수업들이다. 학생 때처럼 필기까지 해가면서 정말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험 보고 돌아서면 까먹는 건 이제 좀 그만하자 싶어) 수업내용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서 읽고 있다.
내가 회사와 집을 좁은 시야로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밖에서는 참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요즘 시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회의 키워드는 무엇인지 해도 해도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에 소속돼서 일하고, 그 월급으로 먹고살고 ,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푼다.
그리고 다시 위 패턴을 반복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삶이 그럭저럭 할 만했다. 큰 만족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큰 불만도 없었다. 내 주변 사람 대다수가 그렇게 사니까 사는 게 다 이런 거지 싶었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이렇게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가장 큰 문제라고 절감한 건 회사를 10년째 다녔는데, (회사 내에서든 밖에서든) 나의 사고 수준과 위치가 입사 전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이다. 이 회사를 다니기로 결정하고 안일하게 살았던 나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이제야 유기적으로 보이는) 회사의 고질적인 문제와 한계도 크다.
오랜 시간 집요하게 생각한 끝에 회사 돌아가는 메커니즘과 기준에 나를 맞춘다면 내 개인의 성장은 영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 이 회사가 바뀌는 일은 내가 다니는 동안 절대 벌어질 것 같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회사와 전혀 상관없는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 더디지만 제일 빠른 길이었다.
3월부터 퇴근 후에 이것저것 시도 중인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순간들이 많다. 내가 입사하고 오늘로서 두 명의 정년 퇴직자가 있었고, 정년퇴직을 앞둔 상사들도 꽤 되지만 아직까진 벤치마킹하고픈 선례라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끝도 없이 막연해질 때면 주입식 교육과 사교육으로 무럭무럭 자란 세대답게 아, 이럴 때 가닥을 잡아주는 학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남의 말만 듣고 수동적으로 살다가 이 사달이 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저번 주말, 이틀 내내 집에서 책을 보면서 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당장 회사를 못 그만두고 일하며 해내기 위해서는 회사를 다닐 동력과 미래를 준비할 동력.
이 두 가지를 잘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란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는 자꾸 무너지기 십상이라, 뜻이 맞는 회사 동료들과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이번 주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최대리를 포함한 평소 친한 동료들에게 제안을 했는데 4명의 후배들이 선뜻 동참해주었다. 자기 계발을 목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들은 다음 함께 모여 토론하기로 했다. 예산 편성 때문에 정식 사내 동아리 신청은 올해 하반기에 해야 하지만 일단 우리끼리는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이 모임을 아시고 취지를 좋게 봐주신 몇몇 선배와 상사분들은 회원가입비 상당의 돈을 후원해주신다며 응원해주셨다.
이 모임 하나로 갑자기 큰 변화나 엄청난 길이 보일 거라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작은 변화가 쌓여 큰 변화가 되고, 안 보이고 몰랐던 길도 보이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우리끼리 스스로 세운 이 모임을 통해서는 다 같이 (조금이라도) 성장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