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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진 Dec 23. 2021

날 것

20-04-21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언제나 좋다고 믿지 않는다.

솔직함이 최고의 무기라는 말은 주먹구구식의 촌스러움으로 다가올 뿐이다.


보일듯 보이지 않는 이를 무정하다며 힐난하면서도 그 신비로움을 동경하는 마음이 움칠 소리를 감추지 못한다.

감추지 못한다는 말처럼 나를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숨기고 싶은 것들이 즐비한데도 결국 머금고 있지 못하고 줄줄 흘려버린다.

나를 풀어헤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성정이 나의 실존을 담당하고 있는 관리자처럼 느껴진다. 필시 못돼 처먹었을 것이다.


양수에 절여져 벌건 내가 철퍽 타인의 앞에 놓여진다.

후회가 내 목을 조를만큼 육중해지고, 역겨운 내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빈번하게, 자연스레 내 삶을 구성한다.

망신살이 꼈나, 다분히 공상적인 의심이 논리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날것은 별로 세련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차피 미끈한 것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니, 그냥 이대로 밀고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뱉어놓고 하는 후회가 나를 완전히 삼켜버리곤 했지만 이젠 이 과정 자체가 같잖아 보인다.

어차피 이것이 나의 실존의 형태라면 나부터 똑바로 응시해야하지 않는가.

자신을 표현하는 삶을 살라는 누군가의 안배일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원래의 나를 봐달라고 서럽게 외치던 나를 당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얼빠져 있던 표정을

온 마음을 다해 미워했지만 날것의 나를 견디지 못했던, 그대로의 나를 괄시했던 스스로가 만들어낸 상황이었음을 이젠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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