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산길도 울며 겨자 먹기로 가다 보면, 끝점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 산의 끝점은 목은 이색 기념관이다. 눈앞의 숲들이 사라지고 기와집과 노란 잔디밭이 나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비록 여기도 사람은 없고, 동상으로 남은 목은선생과 나 둘뿐이다. 이 유명한 학자의 생애와 남긴 글이 후대에 끼친 영향력과 함께 잘 꾸려져 있었으나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한 인물의 생가를 사람들이 기억하고 6백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곳을 지킨다는 것은 경이로울만하다.
고단한 산행 끝에 그늘이 주는 안락함을 뒤로하고 다시 걷는다. 아직 오늘 코스에서 반도 못 갔고, 시간은 2시를 넘어 3시를 향해간다. 이제부터는 그저 평지를 하염없이 걷기만 하면 된다. 길도 어렵지 않으니 지치지 않고 걸으면 된다. 해야 할 일이 고작 걷는 것뿐이라니 참 단순하고 명쾌하다. 길이 쉽고 중간중간 바다를 보며 어촌 마을을 지나니 시원하면서도 마음이 정돈된다.
어느 구간은 지루하게 직선의 길만 이어져있어, 무작정 걷다 잡념도 없어지고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5킬로고 10킬로고 그냥 걷기만 한다는 게 무척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막상 걷다 보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지루함이고 뭐고 어떤 감정, 생각도 일지 않게 된다. 규칙적으로 걷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명상이 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누가 목탁을 두드리듯, 내 안의 알 수 없는 리듬에 이끌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이다. 옆으로는 시선의 해방을 도와주는 푸른 바다가 펼져쳐있고, 다른 한쪽은 별거 없는, 낮은 건물이 있다가 사라졌다가, 나무가 나왔다가 들판이 나왔다가...
하늘을 벗 삼아 열심히 다리를 굴리다 보면 어느 순간 바다도 보이지 않고, 나무도 들판도 모두 보이지 않은 채 내 눈앞에 놓인 한 점에만 시선이 고정된 상태가 된다. 이때에도 내가 길을 보고 있는 것인지 눈만 뜨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며, 눈은 뜨고 있되 무언갈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걷고 있지만 내가 걷는지조차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찾아오며, 나는 무엇보다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이전에도 걸음을 통해 무아지경에 빠지는 경험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이런 게 일종의 걷기 명상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을 뿐 아주 오래전부터 난 이 걷기 명상을 즐겼다. 이에 대해선 차차 다른 글로 풀어 갈 예정이다.
나를 여기까지 기어이 끌고 오게 만든 경험. 내 안의 리듬으로 움직이며 나라는 경계가 허물어져 나와 세상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경험. 내 속이 깨끗이 비워지고 씻겨지는 상쾌함. 새로운 내가 되는 경험. 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 단조로운 길을 걸었다.
해가 기울었다. 길에는 아무도 없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불현듯 눈이 부시게 햇빛이 쏟아지면 시야가 돌아오는 거다. 무아지경에서 깨어났을 때의 약간 나른하지만 개운한 몸. 뻐근한 양쪽 다리가 느껴지면 쉬어야 하는 시점이다. 잠깐 쉴 곳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마땅한 곳이 없을 때도 많다. 그리고 계속 걷다 보니 몸의 감각이 익숙해져 나도 모르게 걸음을 내딛고 있다. 오히려 제멋대로 움직이는 다리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만 같다. 관성대로 움직이는 몸을 바꾸는 그 잠깐이 하루의 에너지를 몽땅 쏟아붓는 것처럼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습관의 무서움에 대해 몸으로 체험하는 바다.
잠깐의 휴식으로 나른해진 몸을 겨우 일으켜 걷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어쩔 수 없이 맨 정신에서 걷는 행군이 시작된다. 이제부터는 고행이다. 발바닥은 불 위를 걷는 듯 뜨겁고 양다리는 사타구니에서 빠질 것처럼 아프다. 아름답게 해가 지는 노을에 감탄도 잠시, 걸음을 재촉한다. 어두워지기 전에 가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쉬지도 않고 걷게 된다. 그러다 곧 내 조바심을 탓하며, '아무렴 어떠냐' 생각한다. 나 혼자 머릿속으로 실컷 떠들다 보면 1~2시간은 금방 지나고, 어느 틈에 다시 명상의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가 또 나왔다가. 전혀 심심치 않다. 성실히 걸어온 탓에 첫날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고래불 형상이 나오니 기쁜 마음 숨길 수가 없다
새벽같이 일어나 긴장감 속에 부지런히 움직인, 녹초 같은 몸을 뉘일 곳을 찾아야 한다. 고래불 해변은 굉장히 한적하면서 고요하고 잘 가꾸어진 해변이다. 가게와 숙박업소들이 꽤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은 적지만 예전에는 피서객들로 붐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중 한 곳을 정해 들어가야 하며, 사실 이곳에 도착했을 때의 내 몸은 백 미터도 더 걷기가 힘들 정도로 지쳐 있었다. 가장 먼저 나오는 곳 아무 데나 들어가려고 했으나, 막상 들어가려니 어딘가 모르게 겁이 났다. 여자 혼자 떠나오니 별게 다 무섭고 난리다.
다행히 마당에 마중 나와(?) 계시던 아주머니를 보고 이끌리듯, 원래 제 집인 양 들어갔다. 긴장하던 마음과는 다르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도 이런 내가 신기했다. 내가 묵은 곳은 작은 여관이었지만 익숙함이 있었고, 방바닥은 너무나 따수워서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내 몸을 꼭 안아주었다. 지친 몸을 잠시 뉘이고 일어나려 했지만 이 따스함은 금방 몸이 풀어지게 만들었다. 종일 굶었다는 생각과, 내일 아침을 거르고 출발해야 하니 지금 먹어야 한다는 삶의 의지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나란 인간. 귀찮다고 굶어 죽진 않겠구나. 주인 아주머니는 근처에 식사할 곳이 있냐고 묻는 내게 자세한 위치를 알려주었다. 또 해가 졌고 여자 혼자니 큰길로 가라고 일러주셨다. 고마운 분... 덕분에 정겨운 중국집에서 볶음밥에 얼큰한 짬뽕국물까지 원샷했다. 지금도 그 저녁을 생각하면 침이 고인다. 시장이 반찬이고 몸을 써야 입맛이 살아난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식사와 가게 전경
시골의 가게들은 이렇게 거리에 사람 하나 없어도 문을 열어 놓는다. 과연 손님이 있나 싶어도 막상 들어가면 손님이 있다. 길에는 사람 하나 없던데 다들 언제 오셨는지 참 신기하다.
만족스러운 저녁식사 후에 숙소에 들어와 겨우 몸을 씻고 다시 누웠다.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질 것 같지만 왠지 잠들기 아까워 억지로 오늘의 길을 복기했다. 내가 오늘 걸은 길... 어떤 풍경이 있었던가. 한 장면 한 장면 기억하다가 꿈인지 뭔지 갑자기 아침이 되었다. 잉? 내가 언제 잠들었을까. 수면내시경 해본 사람은 안다는 그 경험을 여기서 또 해본다.
아 일어나야 하는구나. 일출을 볼 수 있겠다. 다시 걸어보자. 오늘 해야 할 일도 그저 걷는 것 뿐이다.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은, 단조로운 삶을 살고 싶다. 다이어리에 가득찬 to do list, bucket list, wish list 등 수많은 LIST 가 지배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