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이야기

마태복음 13장 8절

by 리오라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꼬꼬댁! 닭 울음소리보다 먼저, 해님이 빼꼼 고개를 내밀기도 전에, 오늘도 어김없이 농부 아저씨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밭 가득 울려 퍼졌어요.


“또 씨를 뿌리러 나온 거야? 이젠 실망할 법도 한데, 어김없이 또 나왔네.”

길가에 떨어졌던 씨앗 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어요.

“그니까, 참 대단한 끈기야. 그런데 어제 너랑 같이 있던 그 친구는 안 보이네?”

돌밭에 있던 씨앗이 물었어요.

“응… 새가… 어제 배가 너무 고프다더니 결국 먹어버렸어.”

“에구, 새들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면서 왜 꼭 우리 같은 걸 먹어야 한대?”

“나도 오늘은 조심해야겠어. 근데 이 땅은 너무 딱딱해서 뿌리조차 내릴 수가 없어. 사람들이 매일 밟고 지나가서 말이야. 어쩌면 오늘이 너랑 이야기하는 마지막일지도 몰라.”

길가의 씨앗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나도 크게 다르진 않아. 돌이 많아서 뿌리를 깊이 못 내리고 있어.”

“그래도 너는 흙이 좀 있으니까 싹은 났잖아?”

“응, 처음엔 너무 기뻤지. 그런데 햇빛이 너무 세면 몸이 타버릴 것 같아. 게다가 돌들 때문에 뿌리도 깊이 못 뻗고… 바람 불 땐 금방이라도 쓰러질까 봐 조마조마해.”

돌밭의 씨앗은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말했어요.

“나는 처음에 네가 춤추는 줄 알았거든. 바람 맞으며 기분 좋아서. 근데 너무 휘청이니까 걱정이 되더라. 오늘은 비도 온다니까 진짜 조심해.”

“응, 기쁜 순간은 잠깐이었어. 햇빛도, 바람도, 비도… 이젠 다 무서워. 그런데 가시떨기 밭에 있는 너는 괜찮아?”

돌밭의 씨가 물었지만, 한동안 대답이 없었어요.

“왜 대답이 없어? 벌써 무슨 일 생긴 거야?”

길가의 씨가 걱정스레 물었어요.

“나도 잘 모르겠어. 눈은 뜨고 있는 것 같은데, 뭔가 걱정이 많은 눈빛이야.”


조금 뒤, 가시떨기 밭의 씨앗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어요.

“나, 땅속엔 좀 들어갔는데… 가시떨기들이 점점 자라나서 내 몸이 움직이질 않아. 처음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지금은 너무 버거워. 여기 가시들 좀 봐, 전보다 훨씬 많아졌어.”

“차라리 돌밭이 낫겠네. 가시는 보기만 해도 아찔해.”

길가의 씨가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나는 하루 종일 걱정만 해. 비바람이 올까 봐, 누가 나를 뽑아갈까 봐, 동물들이 먹어버릴까 봐… 그리고 항상 목이 마르다 보니, 온종일 물 생각만 하게 돼.”

가시떨기 밭의 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어요.

“그 정도면 충분히 마신 거 아니야?”

돌밭의 씨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어요.

“아니, 마셔도 또 마시고 싶어. 땅에 영양분도 더 있었으면 좋겠고…”

“너무 걱정하고 욕심을 부리면 튼튼히 자라기 힘들다던데…”

“알아… 근데 자꾸만 욕심이 나고 걱정이 끊이질 않아.”


“근데 말이야,” 돌밭의 씨가 조심스레 말했어요.

“농부 아저씨는 왜 이런 우리를 보고도 매일 새벽마다 씨를 뿌리러 오는 걸까? 싹도 못 틔우는 우리를 보고 실망스럽지도 않은 걸까?”

“그건 말이지… 저기, 좋은 밭 때문이래.”

길가의 씨가 마치 큰 비밀을 말하듯 속삭였어요.

돌밭과 가시떨기 씨가 귀를 쫑긋 세웠어요.

“왜? 거기도 우리처럼 죽은 거야? 그래서 충격받아서 자꾸 반복하는 거야?”

“아니, 정반대야! 너무 잘 자라서 수확이 엄청났대. 돌도 없고, 가시도 없는 좋은 땅이라서 뿌리도 깊게 내리고 싹도 아주 튼튼하게 났대. 삼십 배, 육십 배, 아니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는 소문이야!”

“와… 그래서 실망하지 않고 계속 씨를 뿌리는 거구나. 우리가 아니어도 어딘가에선 결실을 맺을 수 있으니까.”

“맞아. 아예 뿌리지 않으면 그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다음 날도 새벽이 되자, 농부 아저씨의 노랫소리가 들려왔어요.

그런데 이번엔 아저씨 혼자가 아니었어요. 좋은 밭의 소문을 들은 이웃 동네 농부들도 하나둘 모여 함께 노래를 부르며 씨를 뿌리기 시작했지요.

그중엔 얼마 전 가시떨기 밭에서 시든 씨앗을 보고 너무 실망해서 며칠 동안 밭에 나오지도 않던 농부 아저씨도 있었답니다.

[마태복음 13장 8절]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머리카락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