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이야기

사사기 16장 17절

by 리오라

덜그럭 덜그럭, 철컥 철컥...”

차가운 쇠사슬이 바닥을 끌고, 무거운 돌맷돌이 삐걱삐걱 돌아가는 소리가 캄캄한 감옥 안을 가득 채웠어요. 그 맷돌 앞에는, 두 눈을 잃은 채 지친 몸을 이끌며 돌을 돌리고 있는 한 사나이가 있었지요. 바로, 한때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던 힘을 가졌던 사나이, 삼손이었어요. 삼손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어요. 하지만 그 어떤 후회도, 그를 다시 예전으로 돌려줄 수는 없었지요. 감옥 밖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어요. 삼손을 조롱하고 있었죠.


“하하하! 우리 신 다곤께서 삼손을 우리 손에 넘기셨다!”

그때였어요. 삼손의 어깨 너머에서 조용히 돌아가던 맷돌이 조심스레 말했어요.

“혹시… 저 사람이 그 삼손 맞아? 예전에 성문짝을 어깨에 메고 헤브론 산꼭대기까지 단숨에 올라갔던 바로 그 사람? 분명히 힘이 장사라고 들었는데..”

그러자 삼손의 머리카락, 지금은 다시 자라고 있던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조용히 대답했어요. “맞아. 지금은 쇠사슬에 묶여 있지만, 틀림없는 우리 주인이야.”

머리카락은 삼손의 상처투성이 얼굴을 안타깝게 바라보았어요.

“요즘 블레셋은 잔치 중이래. 자기네 신 다곤에게 제사 지낸다고… 삼손도 불러서 놀림감으로 삼는다나 봐. 너무 불쌍해.”


그때였어요. 감옥 안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고, 삼손은 또다시 밖으로 끌려 나갔어요. 그리고 잠시 뒤, 그는 신전 한가운데, 두 개의 커다란 기둥 사이에 서게 되었지요. 그 모습을 본 머리카락은 깜짝 놀랐어요.

“어라…? 몸에 다시 힘이 들어오는 것 같아!”

삼손은 조심스레 옆에 있던 소년에게 말했어요. “얘야, 이 신전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 어디 있니? 내가 손을 얹고 기대고 싶구나.”

기둥은 삼손의 손이 닿자 깜짝 놀라 속삭였어요. “잠깐, 이게 정말 그 삼손이라고? 천하의 삼손이 여기 와서 이 꼴이라니!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게 말이 돼? 예전엔 머리카락에서 힘이 난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왜 또 이렇게…?”

그러자 머리카락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어요.

“삼손의 진짜 힘은 나한테서 나온 게 아니야.”

“엥? 그럴 리가! 들릴라라는 여자가 너를 밀어버려서 삼손이 힘을 잃은 거잖아! 그 대가로 은을 무려 천백 개씩이나 받았다고 하던데!” 다른 기둥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어요.

“삼손이 여자한테 약한 건 정말 사실이야. 그래도 세 번이나 다른 핑계를 대길래, 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었는데. 결국 넘어가 버리더라. 내가 다 잘리면서 얼마나 속으로 울었는지 몰라...”

“그런데도 너한테서 그런 엄청난 힘이 나오는 게 아니라고?” 기둥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어요.

“그건 사실이지만… 정말 사라진 건 나보다 하나님과의 약속이었어.”

기둥은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하나님과 약속? 그게 무슨 뜻이야?”


머리카락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삼손은 나실인이야.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이었지.”

“나실인? 그게 뭔데?”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특별하게 구별되어 바쳐진 사람. 삼손의 엄마가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는데,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서 삼손을 낳을 거라고 알려주셨대. 그리고 그 아이가 40년 동안 블레셋의 지배 아래 고통받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해낼 거라고 말씀하셨지.”

“풉! 블레셋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다고? 누가? 여기 이렇게 힘없이 묶여 있는 저 삼손이?” 기둥이 어이없다는 듯 비웃으며 말했어요.

“그래서 나실인으로서 몇 가지 약속을 지켜야 했어.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고, 머리도 깎지 않기로.”

“그러면… 머리카락만 지키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뿐이 아니었구나?”

“맞아. 삼손은 죽은 사자의 몸에서 꿀을 꺼내 먹기도 했고, 잔치 자리에서 포도주도 마셨지. 약속은 여러 번 깨어졌지.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나, 머리카락이 밀릴 때였어. 그때 하나님도 그의 곁을 떠나셨어…”

기둥은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런데… 지금 다시 힘이 들어오고 있어. 혹시 하나님이 돌아오신 걸까?”


그 순간, 삼손의 입에서 우레 같은 외침이 터졌어요.

“주 하나님, 부디 저를 기억해 주세요! 단 한 번만 저에게 힘을 주신다면, 제 눈을 뽑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복수하겠습니다!”

두 기둥은 깜짝 놀라며 서로를 쳐다보았어요.

“지금 우리를 꽉 붙잡고 있어! 대체 뭐 하려는 거지?”

머리카락은 조용히 속삭였어요.

“이제는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지만,
그 대신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된 거야.”

그리고 그 순간, 삼손은 두 팔을 벌려 기둥을 힘껏 밀었어요.

“으아아아아—!”


우르르 쾅! 신전이 무너져 내렸고, 그 안에 있던 블레셋 사람들은 모두 무너진 돌 아래에 깔렸어요.

그날, 삼손이 마지막으로 넘어뜨린 사람의 수는 평생 그가 이긴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았답니다.

[사사기 16장 17절]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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