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초라는, 이름

풍선초 이야기(1)

by 리오라

풍선초라니, 참 노골적인 이름 아닌가요. 누가 지었는진 몰라도, 솔직히 마음에 들진 않아요. 듣자마자 풍선이 주렁주렁 달린 모양부터 떠오르지 않겠어요? 그러니 '신비감'은 다 사라져 버리겠죠. 난 신비감을 좋아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힘 중 하나라고 믿거든요. 그래서 그걸 앗아가는 자는, 누구라도 용서할 수가 없어요. 정말, 그자가 누군지만 알면 당장이라도 찾아가 따지고 싶을 정도예요.


소문을 들어보니, 이런 불만을 가진 게 나뿐만은 아닌 모양이에요. 애기똥풀은 요즘 ‘황금풀’로 개명 소송을 진행 중이고, 미치광이풀은 오해 때문에 화병에 걸렸다고 해요. 하루살이는 “오래 사는 게 다 행복은 아니다”라며 강연을 다니지만,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서글픔이 묻어나죠. 아무튼, 이름을 붙인 그자는 요즘 다른 일로 고소를 당해 숨어 다닌다니, 우선 그냥 넘어가야 할까 봐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골 담벼락 아래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살았는데, 이젠 다 뿔뿔이 흩어졌어요. 나팔꽃한텐 노마드의 삶을 즐기는 중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정착하고 싶을 때도 많아요. 정말이지, 여기저기 떠도는 건 너무 피곤해요. 특히 혼자일 때는 더더욱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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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내겐 치명적인 비밀이 있어요. 누구든 나를 보면 웃게 되고,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는 거. 아는 사람만 아는 얘기지만, 내 몸 안에는 모두가 좋아하는 ‘사랑’이 들어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신기해하며 갖고 싶어 해요. 문제는 그 탓에 땅속에 못 들어가고 서랍 속에 갇혀 사는 친구들도 꽤 있다는 사실이죠. 그래도 뭐, 사람 사는 것도 비슷하지 않나요. 서랍만 아닐 뿐, 다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갇혀 살고 있으니까요.


작년쯤이었나, 이 하트 모양에 반해 우릴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누굴까? 우리를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겉으론 무심한 척했지만, 속으론 다들 바쁘게 움직였죠. 하트를 더 짙게 만들고, 모양을 예쁘게 다듬고… 결국 제일 예쁜 하트를 만든 내가 덜컹거리는 택배차에 실려 그 집으로 향하게 되었어요. 처음엔 멀미 때문인지, 두려워서인지 몸이 덜덜 떨렸죠. 하지만 집에 도착해서 예쁜 화분을 보니 마음이 조금 놓였어요.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었어요. 집 구경도 하기 전에 누군가가 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요리조리 굴리기 시작했거든요. 그러곤 내 미모를 여기저기 자랑하고, 감탄하고… 정말 피곤한 반응들이죠. 내가 예쁜 거 이제 알았단 말인가요? 그렇게 다음 날이 되어서야 겨우 흙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니까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다음 날 아침부터 시작됐어요. 나는 원래 아침잠이 많은데, 이 집 아이는 해가 뜨자마자 인사를 하고 종알종알 떠들기 시작했죠. 종달새 아줌마 저리 가라 할 정도더라고요. 잠 좀 자려하면 말을 걸고, 자고 있는데 또 깨우고, 조용히 쉴 틈이 없었죠. 그리고 일주일 동안 내가 아무 기척을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큰 병이라도 걸린 듯 걱정을 늘어놓았어요. 엄마 말을 듣고 물에 불려 심었어야 했다느니.... 정말, 내가 무슨 콩인 줄 아나 봐요.


하지만 뭐랄까. 사랑을 품고 사는 나로서는 따뜻한 관심을 마냥 외면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마음이 약한 게 내 단점이라. 아무튼 너무 시끄럽기도 하고, 이쯤에서 등장해도 괜찮겠다 싶어서 일주일쯤 더 지나 예의상 고개를 살짝 내밀었죠. 그런데 이 아이, 싹을 처음 본 것도 아닐 텐데.. 너무 좋아서 폴짝폴짝 뛰며 “귀여워!”를 외치고 난리였어요. 민망하긴 했지만, 뭐… 이 인기를 어쩌겠어요. 그래서 조금 더 고개를 내밀어주기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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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좀 더 모습을 드러내자, 그 아이는 작년처럼 실수는 하지 않겠다며 여러 번 혼잣말로 다짐했어요. 그 말을 듣고 난 뒤, 나는 아이의 목소리에 조금씩 더 반응하게 되었고요. 작년에 사라진 친구들 생각도 나고, 괜히 마음이 약해지더라고요.


얼마 후, 내 두 번째 매력 포인트인 ‘하늘하늘함’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약하지만 끈질기게 뻗어가는 성실함 덕에, 안타깝게도 잘 휘어지죠. 기댈 곳이 없으면 계속 쓰러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난 도움이 필요하답니다.


아, 맞다. 비밀을 또 하나 말하자면, 나는 텔레파시를 쓸 수 있어요. 물론 아무 하고나 통하는 건 아니지만, 다행히 이 집 아이와는 잘 통하는 것 같아요. 내가 속으로 “기댈 곳”이라고 외치자마자, 집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지지대를 찾아왔거든요. 그리고 날 편히 기댈 수 있게 해 주었어요. 시끄럽긴 해도, 마음은 따뜻한 아이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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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그저 잘 붙잡고 휘감아 올라가기만 하면 돼요. 그럼 또 놀라겠죠. 기대 이상을 보여주는 건 내 특기니까. 내일 날 보며 또 무슨 감탄을 쏟아낼까요. 나한테 너무 빠지면 곤란한데… 뭐, 그것도 내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니까요. 조금 더 지켜보다가, 정말 괜찮은 아이 같으면... 말도 받아줄 생각이에요.


내가 말까지 하는 걸 알면, 더 깜짝 놀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