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통곡 소릴 들은 걸까요?

풍선초 이야기(2)

by 리오라

오늘은 태양이가 조금 일찍 초인종을 눌렀네요. 따스한 햇살도 좋지만, 아직 떠나지 못한 어둠, 태양이가 기지개를 켜기 전의 그 어스름도 꽤 마음에 들어요. 낯선 화분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하루는 매일 조금씩 다른 색을 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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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침마다 같은 생각으로 시작해요.

‘오늘은 미세먼지가 없으려나…’


이 집 아이는 미세먼지가 심하면 창문을 열지 않거든요. 그래서 창문이 오래 닫혀있는 날은 숨이 턱턱 막혀요. 나름 장미과인데, 다른 친구들은 봄축제다 뭐다 들떠 있을 때, 나는 여기서 조용히 이 고귀한 오월을 보냈다니.. 기운이 좀 빠져요. 뭐, 시끄러운 곳에서 듣기 싫은 소리를 한 다발 듣는 것보다 한가롭게 바람 소리를 듣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건 그렇고,

아프리카에 사는 사촌과는 몇 달째 연락이 닿지 않고 있어요. 예전엔 꿀벌이 소식을 전해주곤 했는데, 내가 이 집에 온 뒤로는 길을 잃었나 봐요. 텔레파시도 소용없네요. 혹시 이 집 아이가 뭔가 막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예요. 물론, 뉴질랜드 사는 사촌은 팬데믹 이후 여행도 못 한다니 거기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긴 하죠.


그런데 사람들이 우리를 유해식물이라고도 한대요. 필리핀에선 우리를 먹는다는 끔찍한 소문도 있고요. 왜 우리가 사람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고역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뱀 물렸을 때 특효라니, 뱀에 물린 건 그 사람 탓인데, 왜 우리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생각할수록 억울해요.


아무튼 오늘은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했어요.

성장통 때문인지 자다가도 중간에 한 번씩 깨는데,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지는 날도 많아요. 며칠 전, 이 집 아이가 만들어 준 지지대를 타고 조금 더 위로 올라왔더니, 세상이 꽤 괜찮아 보여요. 힘이 없어 바닥에 꼬꾸라질 뻔했지만, 다시 고개를 들고 버티니 훨씬 살 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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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월이 시작된 모양이에요. 곧 내가 꽃을 피울 차례가 오겠죠. 물론 사람들이 원한다고 바로 피워줄 생각은 없어요. 꽃은 아무 때나 피우는 게 아니거든요. 기분이 좋아야, 몸도 가뿐해야, 그제야 비로소 단장을 시작하죠.


이 집 아이는 나만 보면 벌써부터 “풍선은 언제 달리지~”를 입에 달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에요. 세상 구경을 좀 더 하고,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 그때야 비로소 내 특기를 보여줄 생각이에요.


요즘은 태양이가 너무 많이 웃어서 따라 웃다 보면 자주 목이 말라요. 옆에 사는 재스민은 바람만 불어도 향기를 내뿜어요. 그 향기가 퍼질 때마다 이 집 아이는 기분이 좋다며 난리죠. 솔직히 그 향기가 집 안을 가득 채우면 조금 주눅 들기도 하지만, 그런 일에 일일이 신경 쓰다 보면 말라비틀어지고 말 거예요. 나는 멋진 일에 박수 정도는 크게 쳐줄 줄 알아요. ‘향 너무 좋더라, 진짜..”라고 건네면서요.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에는 잠깐 외출이라도 하고 싶지만, 밖으로 나가려면 그야말로 대공사가 필요해요. 그래서 그냥 바람 그네나 타며 마음을 달래는 중이에요. 이 집 아이는 내가 밤에 외출할 수 있다는 걸 몰라요. 몰라서 다행이죠. 어쩌다 가끔 정말 너무 답답할 땐 밤마실을 살짝 다녀와요. 다만, 집으로 돌아오면 밤새 온몸에 묻은 먼지와 흙을 털어내야 해요. 그래서 요즘처럼 키가 쑥쑥 커서 피곤할 때는 외출을 자제하죠. 잘 자야 잘 클 수 있다니까요.


내가 꽃단장을 시작하면 아이는 또 소리를 지르겠죠. “예뻐~”, “대박~”, 뭐 그런 식으로 호들갑을 떨 테고요. 뭐, 꼭 그 환호가 듣고 싶어서 꽃을 피우는 건 아니에요. 꽃이야, 그냥, 기지개 켜듯, 시원하게 피우면 되는 건데. 하지만 지금은 조금 더 이 초여름을 만끽하고 싶어요.


요즘은 하늘이 물색이라서 기분이 좋네요. 예전에 나랑 소풍 갔던 구름 아줌마가 이 집을 잘 찾아와서, 오후엔 함께 수다를 떠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이 집 아이는 내가 멍하니 혹은 조용히 있는 줄 알겠지만, 그게 바로 인간의 한계죠. 이런 소리를 못 듣는다는 게 참 안쓰러워요. 내가 얼마나 수다스러운지 알면 기절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얼마 전엔 조금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내가 목이 너무 말라 속으로 통곡하고 있었는데, 이 집 아이가 갑자기 다가오더니 “풍선이 목마르지?”라고 묻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더니 자기 컵에 물을 가득 따라 먹여주었죠. 근데 좀 적당히 주지… 한 번에 다 마시느라 진짜 힘들었어요. 이 집 아이는 나쁜 건 아닌데, 중간이 없어요. 늘 극단적이죠.


그런데 정말, 내 통곡 소릴 들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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