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초 이야기(3)
오늘은 내가 손꼽아 기다려온 6월 6일이에요. 완벽한 숫자 6이 나란히 서 있는 날, 보기만 해도 너무 설레요. 경건하게 하루를 시작하려던 찰나, 아침 햇살을 막 받아들이기도 전에 작은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굉음이 집안을 휘감았어요. 내 귀속까지도. 나는 그만 놀라 소중히 아끼던 이슬 한 방울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어요.
나는 이래서 도시가 싫어요. 시골에서도 목청 좋은 닭과 개들의 수다에 놀라서 잠을 설친긴 하지만요. 물론 대도시의 적막은 이제 사람뿐 아니라, 우리 같은 고차원 식물에도 사치인 것 같아요. 남산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린다는 삼촌도 매일 밤 불빛에 시달린다며 그 근처엔 절대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그래서 이곳, 너무 도시도 너무 시골도 아닌 애매한 이곳에 살게 되어서 다행이다 했건만, 이런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있을 줄이야.
오렌지자스민에게 물으니 그 목소리는 몇 달 전부터 들려오기 시작했고, 피로를 부르는 소리라고 했어요. 이 집 애도 벌써 여러 번 짜증을 낸 모양이고요. 하지만 그 목소리의 안내대로 현충일이니 국기를 달겠다고 아침부터 분주해 보였죠. 하지만 벌레 알레르기가 있는 오렌지자스민은 ‘현충’이라는 말이 나오자 쌓였던 불만을 폭포처럼 쏟아냈어요. 계속 듣다 보니 온몸이 피곤해서 결국은 다 못 듣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네요.
‘현충일이라…’ 현충(顯蟲)이라.. 벌레가 나타나는 날인가요?
물론 나도 벌레는 딱 질색이에요. 단, 무당벌레는 예외. 빨강은 초록과 잘 어울리기도 하고, 제법 품위가 있거든요. 무당벌레가 몸에 앉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소문도 있는데, 우리 집안의 호위무사 중에도 이 행운벌레가 있다고 했어요. 그 외에 다른 벌레는 누구든 내 몸에 발을 올렸다가는 다신 못 나갈 할 각오를 해야 해요.
어느새 집집마다 국기가 달렸어요. 이런 날은 바람이 좀 불어줘야 제대로 펄럭일 텐데. 나는 6이라는 숫자를 가장 좋아해요. 비단벌레가 그러던데, 자기네 나라에서는 6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숫자라며 사람들이 자동차 번호로 선호한대요. 벌집도 육각형이니 분명 평범한 숫자는 아닌 거죠. 하지만 내가 6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어요. 바로 이날, 소리가 가장 멀리 울리기 때문이죠.
비밀인데, 숫자 6은 원래 호루라기 모양을 본떠 만든 거예요.
인간은 알 수 없겠지만, 우리에겐 만 리 밖 소리까지 들리는 특별한 날이거든요. 나는 여기 이 집에 살고 있지만, 바다 건너, 산골 숲 속에도 친구와 가족이 있어요. 우리는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려 서로의 소식을 나누죠. 말하자면, 이날은 우리만의 통신망이 터지는 날이에요. 그런데 그 목소리가 이 소리망을 어지럽힌 거죠. 인간이란, 언제나 자기만 생각해요.
내 속이 타들어가는지 알리 없는 이 집 아이는 아침부터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었어요. 내가 조금 더 자랐다며 기뻐했죠. 웃으며 장단을 맞춰줬지만, 솔직히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어요. 내가 이렇게 자란 걸 자기 덕분이라 착각하는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고요.
“평생 너를 키우고 싶어”라는 말엔 숨이 턱 막혔어요. 이 집에서 평생이라니… 또 이곳에서 내년을 맞으라니. 그것도 모자라 곧 풍선이 열릴 거라며 들떠 있으니, 마음이 참 답답하면서... 어쨌든 6월은 말이 잘 통하는 달이라서 기분 좋은 호르몬도 폭발하고, 그래서 어떤 애들은 꽃을 피우기도 하고 뭔가 특별한 변신을 해요.
이슬을 놓쳐 목이 마르기 시작했는데, 아이가 곧장 예쁜 컵에 물을 담아왔어요. 혹시 이번엔 내 생각을 읽은 걸까요? 이번엔 입도 뻥긋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이 아이, 정체가 뭘까요. 분명 연구 대상이에요. 넙죽 받아먹기엔 모양이 좀 빠지지만 어쩌겠어요. 인간들은 자존심 때문에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던데, 우리처럼 물에 목숨 거는 존재에게 그런 자존심은 사치죠. 물 앞에서는 그저 잎사귀를 가지런히 모을 뿐이에요.
참, 며칠 전, 해바라기 언니가 자존심을 부리다 큰 변을 당했다네요. 일편단심 해님만 바라보던 언니는 물을 마시면 나약해 보일 거라며 강한 척 물을 거부하다 온몸에 힘을 잃고 그만…. 그 일로 배운 게 있어요. 인간이든 식물이든, 태양과 물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요. 그래서 나는 뜨거운 날이면, 멀리서 출렁이는 소리만 들려도 바로 고개를 숙여요. 익은 벼만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랍니다. 우리 식물의 생존 비결도 바로 그거예요. 그리고 하나 더, 자연의 공짜 선물 앞에서 늘 감사하는 거죠.
물을 마시고 나니, 서서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엄마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