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색깔

풍선초 이야기(4)

by 리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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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새벽부터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어요. 눈을 살짝 떠보니, 창밖으로 부슬비가 내리고 있더군요. 너무 반가워서, 그만 눈물이 날 뻔했어요.

비 오는 날 창가에 가만히 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건, 내가 은근히 좋아하는 습관 중 하나예요. 하지만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습관이죠. 어젯밤에도 그렇게 조금 울다 잠이 들었답니다.


아침이 밝자, 사람들은 내가 싱싱해졌다고 한 마디씩 던졌어요.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웃었죠.

사람들은 누가 누구의 말을 안 듣는다느니, 서로 이해를 못 했다느니 하며 매번 티격태격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몰라요. 심장의 모양이 다 다르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요? 심장이 다르게 생겼는데, 어떻게 똑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런 당연한 진리도 모르고 인간은 스스로를 참 대단하다고 여긴답니다.

암튼, 내가 밤새 울어서 눈이 부은 걸 보고 싱싱해졌다고 말하다니…… 뭐, 괜찮아요. 익숙한 일이죠. 모두가 내 마음을 알아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니, 어쩌면 너무 잘 알아 버리는 것도 피곤할지 몰라요.


그래서 나는 늘 ‘1 꽃, 1 화분’ 원칙을 고수해요. 어차피 다 알 수도 없는 일인데, 한 화분 안에서 너무 가까이 붙어 있는 건 오히려 착각을 부를 뿐이죠. 적당한 거리, 그게 우리 사이에는 필요하답니다.

가끔 화단에 빽빽하게 있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러워요. 낮엔 서로 친한 척 웃고 있지만, 밤이 되면 사방팔방으로 전화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거든요. 하소연, 넋두리, 그리고… 비밀. 내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죠.


어제 나는 엄마와 통화를 했어요.

엄마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몰라요. 하지만 엄마가 말하지 않는 건 나를 위한 배려라는 걸 알아요. 추측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엄마는 지금 아주 멀리 있다는 것. 다행히도, 내 목소리는 닿았나 봐요. 예전에도 내가 속삭이기만 해도 엄마는 다 알아들었거든요.

지금은 너무 멀리 있어서, 6월 6일 같은 특별한 날에만 연결이 되지만요. 마음 한구석이 조금 아려왔지만, 이렇게라도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엄마는 그곳이 조금 서늘하지만, 햇볕은 잘 든다고 했어요. 좋은 주인을 만나 편안히 지내고 있고, 예전에 스치듯 만났던 벌새 부부도 근처에 살고 있다며 안심시켜 주셨죠.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어디에 있든 잘 적응해야 하고, 꼭 예쁘게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어요. 나는 힘들어도 꼭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답니다.


사실 이 집 아이가 가끔 엄마 이름을 부를 때면, 나도 모르게 엄마 생각이 깊어지곤 해요. 어쩔 수 없죠. 수국 아저씨 말로는, 모든 감정도 결국은 연습을 통해 익숙해지는 거라고 했어요.

이 집 아줌마는 나를 참 잘 돌봐주세요.

혼잣말 같지만 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떤 날엔 노래도 불러주죠. 가끔은 내 속마음을 아는 것 같기도 해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질 때면 나도 모르게 대답하고 싶지만, 절대 소리를 내지는 않아요. 내가 말을 한다는 걸 들키기라도 하면, 그때부턴 평화는 사라질 테니까요. 누군가의 호기심 속에서 보호 관찰 대상이 되고, 연구 대상이 되겠죠.


나는 내가 나라서 사랑받고 싶어요. 내가 말을 해서가 아니라, 그저 존재 자체로. 본질은 그거 하나면 족하거든요.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법을 연습해 왔어요. 그 대신, 나만의 높이로, 나만의 방식으로 말하는 법을 익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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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입으로만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에요. 심장으로도 말할 수 있거든요. 나는 그걸 알아요. 심장의 좌심방과 우심방 사이, 아주 부드러운 그 틈에서 말이 흘러나와요. 그 말들은 빛처럼, 색처럼 다 다르게 생겼답니다. 높낮이나 음량은 몰라도, 색은 확실히 달라요. 그래서 나는, 사람의 말이 소리 없이 흘러나올 때도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느낄 수 있죠.


화가 많은 사람이 가까이 오면,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요. 그 말의 색이 내 몸에 묻을까 봐 걱정되거든요. 그런 말은 너무 빠르게 흐르고, 한순간만 방심해도 손이 더러워져요. 그래서 조심해야 하죠. 반대로, 마음이 맑고 밝은 사람이 다가오면 나는 줄기를 쭉 뻗어요. 그들이야말로 나에게 태양이고, 빛이니까요. 그 말의 색이 내게 닿으면, 나는 온종일 기분이 좋아져요.


아, 이 집 아이가 돌아온 모양이에요.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네요.

눈길도 안 주다니…… 혹시 밀당?


나는 이 아이 마음속에서 어떤 색의 말이 흐르고 있는지 보려고 줄기를 바짝 조였어요. 그런데, 이게 또 무슨 일이죠? 도무지 보이지가 않아요. 어디에도 색이 없네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색일까요?


도대체, 이 아이는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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