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초 이야기(8)
며칠 전부터 마음이 복잡했어요. 키를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이 집 애는 내가 잘 자란다며 매일 기뻐하지만, 나는 자랄수록 점점 더 튼튼하고 높은 누군가가 필요했어요. 왜 나는 저 집 앞 나무들처럼 혼자서 쑥쑥 자라지 못할까, 내 자신이 미워지기도 하면서요.
사실 나는 자존심이 좀 세거든요. 그런데 이 몸은 원래부터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게 되어 있으니, 괜히 더 속이 상했어요. 다른 애들보다도 더 많이 애를 써야 하고, 그만큼 더 조심스러워졌어요. 그렇다고 먼저 “기댈 곳이 필요해요”라고 말하는 것도 어쩐지 뻘쭘하고 싫었어요. 손을 벌리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거든요.
언젠가 엄마가 말했어요.
“가끔은 누군가에게 기대야 하고,
그런 만큼 너도 누군가가 믿고 기대게끔 살아야 해.”
그 말이 틀린 건 아닌데, 막상 해보려면 쉽지가 않더라고요.
전에 이 집 애가 내 등을 받쳐준 적이 있어요. 하지만 키가 자랄수록 마음은 더 불안했어요. 좀 더 단단하고 안전한 곳에 기대고 싶은데…… 이러다 누군가 없는 사이, 정말로 툭 하고 쓰러지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죠.
예전엔 “절대 힘들게는 안 할게”라고 말해 준 적이 있었는데, 막상 또 이런 상황이 되면 과연 나를 잘 받쳐줄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이 집 애를 못 믿는 건 아니에요.
사실, 나에게 참 잘해주거든요. 다정해요. 물도 꼬박꼬박 주고, 원래 내 자리가 아니었는데 햇빛 잘 보이게 하려고 오렌지자스민과 자리를 바꿔주기까지 했어요. 그날 자스민이 울고불고 난리여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다시 자리를 바꿔줄까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아무튼, 그 뒤로는 자스민 얼굴만 봐도 괜히 죄인처럼 마음이 무거웠어요. 하지만 이 창가 자리는 정말 좋았어요. 밖이 훤히 보여서 마음까지 환해지는 기분이 들거든요.
여기까지는 정말 감사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나는 이미 첫 번째 지지대를 넘어 한참을 더 자랐거든요. 이 집 애는 그걸 보고도 날마다 웃으며 “잘 크고 있어”라고 칭찬하지만, 나는 알아요. 지금 이 상태로는 언젠가 꺾일 수도 있다는 것을요. 어제는 다행히 허리가 꺾이기 직전에 애가 내 방향을 살짝 바꿔줬어요. 덕분에 민망한 꼴은 피했지만, 가끔 장난꾸러기 바람이 지나가다가 내 허리를 툭 치고 가면, 그때는 아픈 것보다 자존심이 더 상해서 어디 숨고 싶어 지더라고요.
그래도 다음 날은 다짐해요. 오늘은 흔들리지 않겠다고.
사람들은 내가 질 거로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바람과 맞서 이긴 날도 많거든요. 가끔은 바람이 그런 나를 보고 무섭다고 말하기도 해요.
“너 간지럼도 안 타고 꼿꼿하니까 무서워”라며, 그러더니 이내 와서 애교를 부리기 시작해요.
이렇게 먼저 다가오면 또 외면하지 못하는 나도 참……
아무튼, 나는 며칠째 불안했어요. 그냥 말을 걸어볼까, 얘한테만이라도? 인간 친구 하나쯤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막상 입을 열어도, “더 큰 지지대가 필요해”라고 말하는 건 너무 어렵더라고요. 말 한마디 꺼내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그런데 그 와중에 이 집 애가 또 집을 나가버렸어요.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말은 못 해도 내가 시늉이라도 해서 마음을 전하려 했는데, 아무 말도 없이 나가버렸어요. 오늘 밤이 지나면 정말 더는 버티기 힘들 것 같았는데.. 그래서 고민하다 지쳐버린 나는, 어느새 깊이 잠들어 버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재스민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흔들어 깨웠어요. 눈을 뜨자마자 나는 놀라고 말았어요. 눈앞에 커다란 나무 하나가 서 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내가 밖으로 쫓겨난 줄 알았어요. 순간 뿌리가 오들오들 떨렸어요.
그런데 이 집 애가 그 옆에 서서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어요.
“너무 좋지? 풍선이, 이제 여기 기대!”
얘가 뒷산에서 저 큰 나무를 직접 가져온 거예요. 혹시 내가 쓰러질까 봐, 힘들까 봐.
고맙긴 한데…… 아무튼 대단해요. 이렇게 큰 걸 가져올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그래도 그 순간 며칠 간의 고민이 싹 사라졌어요. 큰 나무를 한 바퀴 돌아보았어요. 백 미터 달리기도 할 수 있을 만큼 크고 넓더라고요. 이제 그냥 그 다정함을 믿기로 했어요. 괜히 걱정했나 봐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얘는…… 독심술이 있는 게 분명해요. 말도 없이 내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았죠? 콧노래가 절로 나왔어요. 그랬더니 얘는 또 금세 눈치채고, 내가 너무 좋아서 난리가 났다며, 이 집 아줌마에게까지 큰 소리로 자랑했어요.
내가 이렇게 들떠 있는 사이,
그 큰 가지는 옆에서 계속 당황해 어쩔 줄 몰라했어요.
“산에 있다가 갑자기 여기에 와버렸어……
여긴 어디지……?”
그러면서 연신 안절부절못했어요. 혹시 내가 이 아이를 가족에게서 떼어놓은 걸까, 갑자기 미안하고 가엽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괜히 내 탓이라고 생각할까 봐, 나는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죠.
한참이 지나서야, 이 아이는 조금씩 안정을 찾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너.. 이름이……?”
그러자 나지막이,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아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