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로 아름다워요

풍선초 이야기(7)

by 리오라

어제 오후쯤이었나,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눈앞으로 빨간 무언가가 둥둥 떠올랐어요. 낯설고 이상하게 생긴 그것이 뭔가 싶어 고개를 더 내밀었더니, 저 아래서 작은 여자아이가 울고 있었어요. 아이는 “풍선!”이라고 외치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고, 그제야 나는 저것이 바로 풍선이라는 걸 알았어요. 사실, 진짜 풍선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이름이 풍선초인데, 풍선을 처음 봤다니 조금 민망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나는 정직하니까 솔직히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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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나는 친구들 몸에 달린 작은 공기 덩이가 풍선인 줄 알고 살았어요. 조금 부풀고, 가끔 색이 변하기도 하는 그것들을 말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크고 둥근 것이 진짜 풍선이라니! 너무 놀라서 옆집 오렌지자스민을 깨울까 하다가 겨우 참았어요. 혹시 이보다 더 큰 풍선도 있을까요?

예전에 아빠가 사람들이 타고 하늘을 나는 풍선도 있다고 말해 준 적이 있어요. 그저 지어낸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것을 보니 정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색깔까지 있다니!

나는 갑자기 내 몸에 달린 풍선들이 하찮게 느껴졌어요. 아무리 커도 저 풍선의 백 분의 일도 안 되는 크기잖아요. 아직 피지도 않은 나의 풍선들이 미리부터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어요.

이상하네요.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보기만 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울적해진 걸까요. 예쁘고 신기한 걸 보고 있었는데, 마음이 괜히 무거워졌어요. 혹시 아이의 울음이 내게 옮은 걸까요?


처음 내 몸에 풍선이 생겼을 때는 정말 기뻐서 동네방네 소문을 낼 뻔했어요. 엄마가 조용히 하라고 말릴 정도였거든요. 세상에서 가장 예쁜 풍선을,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주렁주렁 달게 된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워 보였어요. 앞집 장미 아줌마가 진한 붉은 입술을 바르고 단장할 때보다, 옆집 나팔이가 묘한 색의 새 옷을 자랑할 때보다, 그때의 나는 내 모습이 더 자랑스러웠어요.


그랬던 내가, 작은 아이가 놓친 풍선 하나 때문에 마음이 이렇게 꺼질 줄이야. 자존감이 꺾이는 기분이란 참 묘했어요. 몸이 괜히 무거워졌을 즈음, 이 집 애가 눈에 들어왔어요. 아마 저 멀리서 떠가는 풍선을 함께 보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러더니 내게 쪼르르 다가와서는, 늘 하던 그 말들을 시작했어요.


“목 안 말라? 오늘은 기분은 어때? 날씨 좋지, 하늘 예쁘지……”

이 아이의 말에는 몇 가지 레퍼토리가 있어요. 그리고는 물 한 컵을 주며 이렇게 덧붙였어요.


“난 풍선이 좋아. 놓친 풍선은 더 좋아.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근데 공장에서 나온 풍선이랑 너는 질적으로 달라.”

순간 나는 멈칫했어요. 이게 나를 더 좋아한다는 말일까, 아닌 걸까? 칭찬일까, 위로일까? 그런데 얘가 나를 보며 눈을 반짝이고, 뭔가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니까 괜히 마음이 펴지고 어깨가 솟았어요. 실제로 몸 어딘가가 따뜻하게 돌아가는 기분이었어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듣고만 있었는데, 왜 이렇게 힘이 날까요.

갑자기 정말 예쁜 풍선을 맺고 싶어 졌어요. 저 창밖으로 날아간 빨간 풍선보다 더 곱고, 힘 있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풍선을 말이죠.

내가 비교할 대상은 저 풍선이 아니었구나, 나는 깨달았어요. 나는 실망할 필요도, 기죽을 이유도 없다는 걸요. 쟤도 예쁘지만, 나는 나로 아름다워요.

그 말 한마디에 생겨난 이 낯선 기운. 얘 말대로 ‘질적으로 다른 삶’을 진짜 살아보고 싶어 졌어요.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그냥 나로 살고 싶은 마음 말이죠.


그런데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이 아이의 말 한마디가 나를 이렇게 바꿔놓다니요.

얘는 알까요, 내가 그 말을 다 알아듣는다는 것을? 무심히 던진 그 말들을, 나는 얼마나 오래오래 기억하는지를요. 이 집 아이의 말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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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래 아저씨가 그랬지요. 칭찬만 들으면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고. 얼마나 심하게 흔드는지, 옆집 미역 언니는 누가 와서 칭찬할까 봐 누군가 근처에 올 때마다 일부러 몸을 흔들어 방해한대요. 근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고래 아저씨가 왜 그렇게 들썩였는지 알 것 같아요. 언젠가 바다에 놀러 가면, 아저씨도 나와 같은 기분인 건지 물어보고 싶네요.


말이란, 정말 힘이 있는 걸까요?

특히 칭찬하는 말에는, 도대체 어떤 색의 에너지가 숨어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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